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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Jan 05. 2022

대만 남자친구와 2주 만나고 2년 장거리를 하기까지-2

사귄 지 2주 만에 대만-유럽 장거리가 되어버린 우리

https://brunch.co.kr/@taiwanoutsider/39


" 那在你生日我們一起吃飯吧~(그럼 네 생일 때 같이 밥 먹자~) "


그렇게 친구로 남으려는 나와 팅이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약속을 잡게 되었다.




드디어 9월 11일, 내 생일이 되었다. 우리는 국부기념관 역 근처에 위치한  이자까야에서 만나 그전에 나누지 못했던 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체코로 가게 된 계기, 그동안의 근황, 대만에서의 생활 등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즐겁게 흥청망청 술을 계속 마시다가 남자친구(팅이)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가방에서 종이백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한국인에게는 뭘 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고민했다며 준 것은 바로 술, 레몬 그리고 살짝 잘려나간 시나몬 롤 한 조각이었다. 비싸고 화려한 선물이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민해서 준비해줬다는 것에 감사했다.


"哇,謝謝你!(와 고마워!) "

"嗯嗯,但是我有一個事情要跟你講 (응응, 근데 나 할 말이 있는데...)"

"怎麽了(뭔데?)"

"…我忘記帶錢包 (...나 지갑 들고 오는 걸 잊어버렸어) "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팅이의 표정을 보다가 나는 그만 빵 터져버렸다. 선물은 챙겨 왔으면서 지갑은 두고 온 그 상황이 웃기기도 했고 지갑을 안 들고 온 것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팅이가 귀엽기도 했다.


"沒關係,我有帶錢 (괜찮아.   있거든)"

"真的忘記了!不好意思. 下次我生日我請你吃飯吧(정말 잊어버렸어! 미안. 다음에 내 생일날에 내가 밥 사줄게.)"


술김에 용기를 낸 데이트 신청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정말로 갚으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어쨌든 우리는 '또'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을 잡게 되었다. 그 후에는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둘이서 5병을 마시고는 헤롱헤롱한 상태로 집에 돌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매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학생 때처럼 1초 만에 칼같이 답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그런 편안한 연락을 이어갔다.




 그렇게 5일이 지나고 팅이의 생일날 우리는 한 대만식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팅이는 이번에는 정말 지갑을 가져왔다면서 오늘은 무조건 본인이 다 낼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중국어 메뉴에 약한 나를 대신에 이것저것 괜찮은 메뉴를 주문해주었다.


 그날도 술을 먹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우리 둘 다 꽤나 자제를 하며 술을 마셨다. 무언가 이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 같다는 감이 온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시간이 꽤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팅이는 계속 맨 정신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소화나 시킬 겸 둘이서 松菸이라고 불리는 공원을 걷기로 했다. 그때가 9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더운 여름 기운에 나는 얼마 못가 지쳤고 결국 벤치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상형 이야기가 잠시 나왔는데 내가 나는 손이 큰 사람이 좋다고 하니까 팅이가 본인의 손을 펼쳐 보이며 '나 손 엄청 크다!'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손이 크니 작 장난을 치다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잡은 그대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그 당시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었다. 지금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계속 뻔뻔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일을 같이 축하한 후, 우리는 가끔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우리는 우리의 사이에 대한 정의를 전혀 내리지 않고 그저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같이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팅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明天有空嗎? 要不要一起去基隆玩 ( 뭐해? 같이 지롱 -타이베이의 교외 지역- 놀러 갈래?)"


내가 예전에 흘러가는 말로 팅이에게 단 한 번도 지롱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 적이 있었다. 타이베이에는 바다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지롱 바닷가에 가보고 싶다고. 딱 한 번 술김에 말했었는데 팅이는 그런 걸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는 지롱으로 세 번째 데이트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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