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 대만
"이해가 안 돼, 내가 널 사랑하는 게 왜 그녀를 슬프게 만드는지." 「誰先愛上他的」중에서
나의 남편이 갑자기 나에게서 떠나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이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위의 이야기는 대만에서 크게 흥행한 「나의 Ex(誰先愛上他的)」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원제목의 의미는 대략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을까'인데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면, 어느 남자가 죽게 되고 그 남자가 자신의 보험금을 아내나 아들이 아닌 자신의 남자친구로 앞으로 남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영화가 코미디 요소를 보여줘서 동성애라는 장르를 우습게 표현한 영화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보게 되면 오히려 동성애라는 주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 알게 된다. 한순간에 남편을 잃어버린 아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 남편, 그리고 그런 남자의 곁을 지키는 한 남자. 또 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상처받는 아들.
이 영화는 누가 옳거나 그르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보여줄 뿐이다. 즉, 이 영화는 이성애자의 사랑, 그리고 동성애자의 사랑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줄거리를 말하기보다는 이 영화에서 말하는 동성애, 좀 더 확장하여 대만이라는 나라의 동성애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도 최근 퀴어 축제 등이 비교적 자주 열리고 드라마나 영화 속 소재에서 간간이 동성애 요소를 드러내는 등, 동성애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로 취급하기 어려운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 국가들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해 한국은 매우 보수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나라에서, 특히 한국 내에서도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온 나였기에 대만에서 처음 접한 동성애 문화는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단 나는 그전까지는 내 주위에서 동성애자 친구를 만난 적도, 정체성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동성애 문화란 그저 TV나 영화에서만 보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 친구를 종종 만날 수 있었고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만 내 동성애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대만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 한다. 동성애가 옳다, 그르다 등의 이야기보다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이 글을 씀을 밝히며 자료의 오류 등에 대해서는 지적을 받겠지만 그 외 내 경험 및 의견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미리 사양하겠다.
1. 대만의 동성애 문화
2018년 대만에서 매우 이슈였던 '공투(公投)'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동성 결혼 합법화'였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대만은 이미 동성혼이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물론 공투에서 여러 중요한 의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이 동성 결혼 합법화는 그 중요한 의제 중에서도 정말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의제에 대해 온 국민이 투표를 한다는 상황 자체를 생각하면, 대만의 동성애에 대한 시선은 한국에 비해 얼마나 개방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만은 엄청난 규모의 LGBT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대만동지유행(臺灣同志遊行-여기서 동지는 LGBT를 의미)', 영어로는 'Taiwan LGBT Pride'라고 불리는 축제로 2018년 기준 참여자 수가 13만 7천 명에 달했는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준이다. 특히 2018년에 열린 이 축제는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 묻는 '공투(公投)' 바로 직전이어서 더 큰 관심 속에 거행되었다.
그리고 2015년 가오슝에서 동성 커플이 서로의 반려자임을 증명하는 동반자 등록제를 최초로 도입했다. 그 후에 타이베이, 타이중 순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가 현재는 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러한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완벽하게 반려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이걸 실시했다는 것 자체가 대만에서는 이미 동성 커플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아래는 타이베이에서 발급해주는 '동성반려증(同性伴侶證)'이다.
2. 그렇다면 왜 하필 대만인가.
그렇다면 이제 의문이 하나 들 것이다. 어째서 대만은 동성애 문화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나라가 되었는가? 분명 대만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왜 지금의 한국과 대만 내 동성애 문화는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가?
위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대만에서 동성애 문화에 큰 획을 그은 작가 바이시엔용(白先勇)의 소설 '불효자(孽子)'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책의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장군의 아들인 주인공이 동성애라는 이른바 '불효'를 저지르는 이야기인데 작가 바이시엔용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작가는 이미 커밍아웃을 한 게이이며 작가의 아버지는 국민당 출신 장군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성애 문화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이 무려 1983년에 단행본으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동성애 문학 작품이 나온 게 뭐가 대단한 것인가 싶겠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36년 전이다. 심지어 한국은 아직까지도 이런 동성애 문화나 코드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얼마나 이 작품이 파격적인 작품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03년에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불효자' 또한 대박이 났다)
이 책이 나온 3년 후 1986년, 대만에서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치지아웨이(祁家威)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주장했다. 치지아웨이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민법의 내용을 위헌이라 주장하며 2015년에 민법 해석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법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2017년 5월 24일, 마침내 이것이 위헌이라고 판결 지으며 사실상 헌법에서 동성 결혼 합법화를 인정하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2년 내에 위헌이 된 이 법안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참고로 2019년 5월 24일이 바로 그 2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한 대만 동성애 기원에 대해 다룬 논문에서는 또 다른 원인으로 '종교'를 이야기한다. 대만에 놀러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실제 길을 지나가다가 사원이나 절을 한국에서 교회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부적을 태운다든지, 향을 피우는 모습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실제 아래 그래프를 보면, 대만 내 민간신앙과 불교 신자 등의 비율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 기독교는 5% 정도만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대만 내에서도 동성애를 지지하는 기독교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앞장서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이러한 기독교 신자의 비율 및 절대적인 수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동성애에 대하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대만의 이러한 종교인의 비율이 활발한 퀴어 활동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주요 원인 하나가 바로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의 당선이다. 민진당이 동성애에 대하여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고 차이잉원의 공약 중 하나가 동성 결혼 합법화이다 보니, 차이잉원의 당선 자체가 대만 동성애 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실제로 차이잉원은 당선 이후 자신의 SNS에 '혼인평권(대만 내 동성 결혼 합법화 운동의 명칭)을 지지한다'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외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금의 대만 동성애 문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며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등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한 대만이 왜 동성애 문화에 있어서는 이렇게 다른 입장 차이를 보이는지 위와 같은 이유들을 고려해본다면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3. 고찰
2019년 대학내일에서 발표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점점 더 많은 대학생들이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는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친구 이상으로 동성애자를 두는 것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이 결과가 한국의 동성애 문화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인정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정은 할 수 있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만에서 동성애자 친구들을 만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많은 인식의 변화를 겪었고, 나의 이런 경험을 나누고 대만의 동성애 문화를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나도 이 주제가 얼마나 예민하고 조심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영원히 동성애를 그저 남의 이야기로 덮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퀴어 축제가 한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동성애 문화를 그저 남의 이야기로 취급하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통해 합의점을 찾고 사회적 변화를 이뤄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https://wspaper.org/article/18717
https://zh.wikipedia.org/wiki/%E5%AD%BD%E5%AD%90_(%E9%9B%BB%E8%A6%96%E5%8A%87)
http://www.bookpot.net/news/articleView.html?idxno=1532
https://zh.wikipedia.org/wiki/%E5%8F%B0%E7%81%A3%E5%90%8C%E5%BF%97%E9%81%8A%E8%A1%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