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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Feb 28. 2023

비교하는 삶-14화

3년 전, 이 곳 대치동에 입성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4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아파트. 게다가 30평대 초반의 이 곳은 구조 또한 옛날식 아파트라 요즘 새로 지어진 20평대 아파트 정도의 크기로 느껴진다. 하는 수 없이 무리 하여 인테리어를 진행 했고, 다행히 괜찮은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 구조 변경 등을 통해 새로 리모델링 된 우리의 보금 자리에 지금껏 만족 하며 지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 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였는지, 나름 새 집의 구색을 갖춘 나의 집에서 대치 인프라를 누리며 살기에는 그 만족도가 매우 컸다. 주재원으로 나갔던 남편과 함께 나간 큰 아이도 들어와 이 곳에서 제 2의 가정을 꾸리며 살게 된 시점이기도 하니,더 만족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이나 나나 대기업에 다니고 있던 터라, 20년이 넘는 직장 생활과 꾸준한 승진 덕에 고액 연봉자로 회사가 주는 최고의 복리 혜택을 받고 있었으며,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으로 무언가 성공자의 대열에 오른 것 같은 뜬 구름 위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큰 아이는 아이 대로 열심히 공부 하여 본인이 원하는 점수를 받아오고 있었고, 작은 아이만 이 곳 대치동에서 제대로 한국 교육에 매진 해서 그 열차의 대열에 올라 탄다면,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년 전, 내가 재직 중에 있던 회사는 미국 본사의 철수 방침에 따라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20년 이상 한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늘 갑갑해 했고, 내가 스스로 결정 하여 퇴사 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 ‘제발 철수하기를…’ 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건만, 막상 철수를 발표 하고 퇴사하게 생겼으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물 처럼 크게 밀려왔다. 내가 그동안 생각 하지 못했던 많은 기득권들을 누리며 살아왔고, 그 기득권들과 나를 지탱해 주었던 ‘회사’라는 후광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처음에는 자존감의 문제라 생각했다.

지지리 못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잘하는 것이 없으면, 고작 퇴사로 이렇게 나의 존재감이란 게 모래성처럼 무너지는가 싶었던 것이다.


마음 한 켠에서는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잖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힘들게 돈을 벌고 재테크해서 이마만큼 올라오게 된거야. 이제 좀 쉴만도 하잖아.’ 하며 나를 다독이는 또 다른 나도 있었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대치동에서 살아 가려면 내 존재가 너무 작아져 버렸다는 생각에, 그리고 앞으로 이들과 발맞추어 살아가려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증을 내며 나를 또다른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해 졌지만, 속이 너무 시끄럽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참 사람 맘은 간사하다.

예전엔 집에 있는 여자들을 참 부러워했었더랬다.

여유롭게 브런치하며 수다 떨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 운동 가서 건강 관리하고, 아이들 케어하며 하루를 보내는 여자들.

막상 내가 쉬는 처지가 되고 보니, 카페에 있어도 무언가 노트북을 두드리는 여자들이나 직장인이 점심에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사가는 모습들이 어쩜 저리 다들 능력자들로 보이는지..

물론 아직 퇴사 후 고용보험에서 돈을 받고 있는 기간이고, 퇴사 1년도 안되었으니 분명 나도 경단녀는 아니겠으나, 내가 들어 가려는 곳은 나의 나이와 경력으로 나를 거부하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곤 일이 지긋지긋해서 나온 같은 부류의 회사이니 이도 저도 결정을 못내릴 판이다.

막상 나가서 일할 생각을 하면 또 선뜻 내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집에 앉아 미래를 불안해 하며 하루 하루를 소비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끔찍하다.


퇴사 결정 후에도 세일즈 직무에 있던 직원들은 재입사가 가능해졌다.

나도 한 때는 세일즈 직무에서 인정받던 직원이었다. 하지만 하루  살이 같은 그 일이 너무 싫어 손을 들어 후선으로 빠져나왔고, 다행히 지루한 감은 있었지만, 줄곧 겪어 왔던 ‘월요병’이라는 직업병은 온데간데 없이 씻겨져 나갔다. 가끔씩 진상 일이 떠맡겨 졌지만, 그래도 세일즈 만큼의 고된 강도는 아니었다.

나름 지낼만 했다. 주변 동료들과 잘만 지내면,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정년까지도 꿈 꿀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이후에도 내가 세일즈에 있었을 당시, 나름 열심히 했고 잘 했던 터라, 몇몇 팀리더들은 지속적으로 내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이젠 전방으로 나와야지


철수 발표 6개월 전까지도 좋아하는 리더로부터 러브콜이 있었지만, 재택 근무의 달콤한 환경, 그리고 세일즈라는 험지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라는 현 세일즈 업에 있던 동료 들의 만류에 그만 맘을 접었더랬다. 하지만, 결국 재취업의 기회를 잡은 건 세일즈 직무에 있던 직원들이었고, 그들이 늘상 주장해 왔던 대로 노아의 방주를 타고 생존하여 유유히 다른 회사로 흘러들어갔다.


내가 세일즈를 포기하고 나왔을 때는 분명 그러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래서 선택을 했었을 거다.

또한 퇴사를 결정하게 된 때에도 분명 그 누구보다 내 일이기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서 결정했을 거다.

하지만, 현재 나는 그 당시 내가 가지 않았던 길을 바라 보며, 그 때의 결정을 부인하고 후회하고 있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한거지?


나는 내 결정을 옳게 만들기 위해서 무조건 그들보다 잘 되어야만 했다.


너희들도 세일즈가 좋아서 재취업하진 않았을거야. 너희가 이직해서 다니는 그 시간동안 난 너희보다 더 좋은 기회를 잡아서 성공하고 말거야. 니들이 부러워할만큼…



최고의 복수는 내가 잘 되는 거라지 않나.

난 경제적으로도 커리어적으로도 그들보다 앞서 나가야 했다. 적어도 한 푼이라도 더 투자에서 그들을 이겨야 했고, 뭔가 더 좋은 업종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이 내뜻대로 내맘대로 그리 호락호락할 수 있겠는가.


배운게 도둑질이니, 나의 경력을 살려 같은 업종으로 계속 구직 활동을 이어갔으나, 이미 취업 시장에 풀린 구직자들이 많아  내가 요구하는 조건으로 재취업 하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평소 관심 있던 분야로 취업을 모색 했지만, 경험이 미천하여 연봉 수준은 한참 아래이다 보니, 선뜻 엄두도 못내고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직한 그들보다 투자로라도 더 벌어야 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변동성이 큰 장세였기 때문에 단타로 투자 수익을 올리려는 무리한 설계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고객에게도 내 자신의 투자금으로 ‘절대’로 하지 않았던 단타 투자.

과연 성공했을까.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현재 나는 몇 푼 받은 퇴직금으로 단타 투자를 했다가 결국 6개월만에 손실을 인정 하고 나왔다.

또다시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그들은 나보다 6개월 더 일 했으니, 최소 몇천을 더 벌었을 거고, 투자는 나처럼 손해 보진 않았겠지’라는 비교에 비교를 거듭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구역질이 나왔다.

할말을 잃었다. 무기력 해지기 시작했다. 자기 효능감이 점점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내 자신을 상처 내고 있었고, 그간 끈끈하게 지내 왔던 회사 동료들과도 노선이 달라 지며 한없는 비교로 나를 처참히 밟아가는 수위는 이미 임계치에 다다르게 되었다.






인간은 비교 하며 살아간다.

남들과 비교 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나보다 덜한 사람을 보며 위로 받고, 나보다 더한 사람을 보며 상실감을 얻는다.

내가 대치동에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간절히 찾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그들 보다 내가 낫다는 자기 위안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슬프지만, 사실이다.

어쩌다 소시민을 찾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나에게 비교 당하며 나와 교류해 나가겠지.

섬뜩하다. 앞으로 계속 비교비교 하며 살아갈 내 삶이…


나를 온전히 나대로 바라보며,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삶.

비교에서 벗어나 제대로 내가 서지 않고는 이 곳 대치동에서 버틸 재간이 없을 것 같다.

더이상은 나를 망가뜨리지 말고 자꾸 타인과의 ‘비교’로 가려고 하는 마음과 시선들을 거둔 채, 내 스스로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비교하는 건전한 마음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도 난 이 곳에서 가까스로 내 자신을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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