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고 Feb 23. 2023

대치동의 노인들

대치동에서 나이 들어 가렵니다.

대치동을 집약하는 3가지.

1. 최적의 교육환경

2. 젊은 평균연령

3. 고액연봉자/전문직


이렇다고들 한다. 사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기에도 딱맞는 집약이다.

교육 환경은 더 말해 무엇하랴. 유해 환경이라곤 눈 씻고 찾아 봐도 없고, 기껏해야 치킨 집의 호프가 전부인 이 곳은 술집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특목고가 필요없는 전통 8학군을 중심으로 체육복 차림의 수수한 아이들이 학원을 오가는 진정 최적의 교육 환경을 자랑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가이든 전세입자이든 고액 연봉자의 전문직군의 학부모가 즐비 하고 학구열이 높은 자수 성가한, 혹은 원래부터 강남키즈(대치키즈)였던 사람들로 모여져 있다.(이는 물론 주관적인 견해이나, 내가 보아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확실히 옆동네 수서나 개포보다 노인들이 현저히 적어 보인다.

간혹 보이는 노인분들은 옆에 손주와 함께 다니는 분들이 많다. 분명 자녀들을 근처에 끼고  사시는 토박이 분들이리라.


우리 라인의 한 노부부는 두분이서 사신다.

주말에 가끔씩 자녀로 보이는 딸과 아들 내외가 들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머니로 보이는 이 할머니는 꽤나 멋쟁이시다.

늘 점잖은 명품을 하고 다니며, 요즘 젊은이들의 대세인 ‘꾸안꾸’가 되시는 분이다.

패션 센스로나 기품으로나 눈이 저절로 가는 분이시다.

평일 이른 아침에 골프 가방을 들고 픽업 나온 세 분의 할머니들과 같은 차를 타고 나가시거나, 모임이 있을 때는 나이든 분들에게 생각보다 매칭이 어려운 블랙 앤 화이트 컬러로 세련된 멋을 내시고는 나가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리모델링 된 집도 너무 이쁘다.

직접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한 때 이 집으로 들어올 때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 관련 업체를 찾느라 인터넷을 샅샅이 다 뒤진 적이 있었는데, 딱 내취향으로 완성된 집을 보고 이 쪽 업체랑 인테리어를 진행할 시도도 했었다.(본의아니게, 하청 업체를 준다는 썰을 듣고는 다른 업체와 진행했지만…)

그래서 그 집의 구조나 색감, 빌트인된 가구들을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보게 되어 은근 친근함이 있다.(물론 그분들은 모르게 나 혼자 친근한..)


그 분을 보며, 최대한 이 곳에서 버티며 늙어가면서 내 손주들에게 ‘대치동 할머니’로 불리우고 싶은 로망도 새록새록 꿈틀거리곤 했었다.

그래서 버티고 싶다. 이 곳 대치동에서. 비록 생활이 험블할 지라도..




주말 새벽 일요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

코로나 발발 하자마자 이 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미사도 한참이나 안갔더랬다.

성당을 나가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주전 부터다.

이전엔 마포에 있는 성당을 다녔었고, 그 곳도 새벽 미사엔 늘 노인들이 많았다.

대치동에 와서 처음 가 본 성당의 새벽 미사 역시 노인분들이 주를 이루었다.

한참이나 안나간지라 고해 성사를 보고 맨 끝 구석 자리에 앉았다.

미사를 모두 마치고 긴 의자의 끝에 편에 앉아 계셨던 노부부는 나를 거쳐 나가셔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미사를 모두 마쳤지만, 고해성사 때 받은 보속 기도가 끝나지 않아 더 앉아 기도를 진행해야 했는데, 노부부가 내쪽으로 오시면 당연히 일어서 자리를 비켜드리려 했다.

그런데, 내가 일어나지 않고 기도를 시작하자, 두 분은 멀리 돌아서 앞 줄 의자를 통해 밖으로 나가셨다.

순간이지만, 너무 감사했다.

정말이지 저렇게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였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왠지 모를 무대포 근성이 은연중에 튀어나오곤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나부터, 나만 아님 된다식의 태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들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어져야 하고, 인생 선배로서 사회와 약자, 젊은이들에게 좀 더 넓게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라고 생각하는 일인 이지만, 쉽사리 실행에 옮기질 못한다. 물론 내가 겪은 일부의 에피소드로 대치동의 모든 노인들이 그러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나이든 분들을 이 곳 대치에서 직접 겪어보며,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 간다면, 점잖고 너그러운 그들의 태도가 나에게도 점차로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치동 교육의 현주소-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