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대치동을 제대로,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이 곳에 들어와서 느끼는 바대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소견으로 말해 보고 싶다.
작은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대치동으로 들어왔다.
평생을 신식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내 출생년도와 별반 차이없는 이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오기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들어오기 전에 큰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지만, 그래도 2%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엄마들과의 교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되면서부터는 작은 아이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가끔 놀러왔고, 점차적으로 그 아이들의 엄마들과도 조금씩 만남을 갖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이 집을 들어오기 전에도 전세입자들에게 전세를 많이 줬더랬다.
그들 모두가 평범한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이었고, 아이가 공부를 잘 해서 대치동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전국 각지에서 공부 좀 한다치면, 이 쪽 전세로 많이들 들어오곤 한다.
그래서, 난 이 곳 대치동을 만만하게 본 거 같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작은 아이 친구들의 엄마는 죄다 전문직이다.
한의사, 의사, 약사, 판검사..
한 번은 한 친구의 엄마와 통성명을 하다가 금융계에 있다 해서 서로 반가워했었는데(사실 난 이제야 소시민을 찾았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바로 나오는 말이 외환딜러란다.
역시나.
물론 내가 아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적이고, 또 나의 행동반경이 넓지 않다 보니, 지금 내가 구사하고 있는 현실이 전부는 아닐지어다.
허나 왜 주변에 나같은 극히 아주 지극한 소시민은 보이지 않는 걸까..
거두절미하고, 대치동의 아이들은 학원을 기본적으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닌다.
어릴 때부터 그 시스템 안에서 철저하게 그 것이 룰인 것처럼 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예민한 엄마들은 더더더 많은 학원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를 그 집단 안에 태우는 것이고, 덜 예민한 엄마들은 아니 덜 예민해 지려고 보고싶은 것만 보려는 엄마들은 적당히(여기서 적당히란 일반 지역의 2~3배는 거뜬히 넘으리라 예상한다) 학원을 보내며 아이가 잘 버텨내 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난 정의 내렸다.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주요과목은 과목당 2~3개의 학원이 기본이다. 그러면 국, 영, 수만 하더라도 7~8개의 학원을 가야하고, 초등학생들도 새벽 1시까지 학원숙제를 하고 있으며, 아이들은 순종적으로 잘 받아들이며 버텨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원래부터 부모의 유전인자를 그렇게 타고 태어난 아이들이라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이 곳 대치동 근처의 카페들은 오후 시간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엄마와 아이들이 꽉꽉 채우고 있다.
학원과 학원 중간시간의 짜투리 조차 용납하지 않기 위해 엄마는 자리를 맡아놓고 아이를 기다리며 아이가 오면 카페의 샌드위치와 음료를 먹여가며 숙제를 봐준다.
여기서 잠시. 전문직인 엄마들이 어떻게 아이들 교육에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그녀들은 직업은 있으나 정말 자유로운 프리랜서인 진정한 전문직이었다.
한의사라도 한의원을 개원하지 않고,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는 월급 의사처럼 잠깐만 나가서 일하는 정도. 커리어에 단절이 없을 정도로만 일하는.
하아.. 얼마나 멋진가. 진정한 전문직 아닌가.
진정 아이의 교육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있는 듯 했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이 곳은 돈이 더 많고 적고, 누가 더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등수대로 평가가 내려진다.
초등 저학년일때는 학원의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 가고 싶어도 돈을 낸다 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넘사벽’의 학원들이 무수하게 많은 곳이다.
넘사벽의 학원 내에서도 어떤 레벨인가에 따라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바로 내가 이 집을 들어오기 직전 전세입자는 우리 집에서 큰 아들을 서울대에 입학시켰고, 작은 아이는 이 근처 전국 평가 1위인 중학교에서 내신 1등급으로 민사고에 입학시킨 전업 주부였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집을 살까 전세로 들어올까 고민했던 사람으로 부동산업자에게 들었었는데, 그들은 전세를 고집했고, 우리는 매매를 했었더랬다.
아직도 집 얘기를 할 때면 그녀의 얼굴에 그늘이 졌었지만, 바로 아이들 학교 보낸 것에 비법을 알려달라고 내가 묻자 환하게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나에게 긔뜸해주곤 하는 곳이 바로 이 곳 대치동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오후 8시.
이 시간에도 공부하는 아이들로 독서실인지 스터디카페인지 모를 만큼 아이들이 가득 차 있다. 물론 나이대가 중학생으로 바뀌었을 뿐.
그 작은 한 켠에 겨우 자리 하나를 내어 끄적이고 있는 나.
얼른 들어가서 우리 둘째아이 학원 시간 끝나는 것에 맞춰 나도 숙제를 봐줘야겠다는 조급함이 밀려오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