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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Apr 03. 2023

내 방식대로의 교육

잠봉뵈르를 먹으며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다.


갈수록 빵에 대한 마음과 나이는 비례하는 것 같다.

나폴레옹 제과점에 가면 '생크림모카빵'을, 곤트란쉐리에 빵집에 가면 '소금빵'을, 그리고 나의 최애 빵집 김영모 과자점에 가면 '빅토리아 바게트샌드위치'를 빼놓지 않고 장바구니 안에 주섬주섬 쑤셔 넣게 된다.


예전부터 나에게 빵집은 지나칠 수 없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대학다닐 때, 'Migo'라는 빵집에서 처음으로 오징어 먹물빵 일명 '블랙 브레드(스틱)'에 입문한 이래, 검정색을 띈 빵만 보면 그냥 환장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아쉽게도 몇 년 전, 미고 빵집은 아예 우리나라에서 철수한 탓에 다른 빵집의 그 비스무리한 검은색 빵만 보면, 몇개 씩이고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 놓고 곶감 빼먹듯 했으니까.



대학을 서울로 유학오면서, 나에게 가장 만만한 아침은 샌드위치였다.

어렸을 적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을 먹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저질 체력이었다.

처음엔 자취 집에서 만들기 시작한 간단한 샌드위치였건만, 날이 갈수록 '건강'을 챙긴다는 심오한 목적을 가미해 샌드위치 안에는 그 속재료가 넘칠 만큼 추가되었다. 사실 햄과 치즈, 약간의 잼과 마요네즈만 발라도 훌륭했던 맛이었지만, 점점 토마토, 양상추, 치즈, 햄, 적색양파, 닭가슴살, 삶은 달걀 저민것, 오이, 슬라이스 올리브까지 넣고는 최종적으로 오일과 후추 소금, 게다가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까지 바르고 나면 한 입 베어먹기도 전에 샌드위치 속이 터져 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어찌저찌 터진 샌드위치를 몇 입 베어 입에 욱여 넣고는 반에 반도 제대로 못 먹고, 절반 이상은 남기고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란 사람은 원래가 타고난 식탐에 비해 안타깝게도 소식좌였다.


아침에 샌드위치로 전쟁을 치르고 나면, 집을 나오며 속은 메스껍고 트름만 수십번 뱉어 냈다. 그러면서 다시는 속재료를 많이 넣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건만,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건강'을 운운하며, 구워진 식빵 안에 냉털러로 변신한 듯, 갖가지 야채와 단백질 거리를 쑤셔넣었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회사를 다닐 때엔, 아침부터 삼삼오오 친한 직원들과 점심 메뉴를 갈등하는 즐거운 고민을 했더랬다. 누군가 특별히 먹고 싶다는 메뉴를 아침부터 말하지 않을 때엔 점심에 우루루 몰려나가 근처 이모카세 백반집을 가는 것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침에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 누군가와 점심 약속을 하지 않은 이상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혼자 먹다보면 특별히 입맛도 없다.

그럴 때 샌드위치나 김밥을 간단히 사서 먹는 경우가 잦아 들었다.


최근에 맛을 들이게 된 샌드위치가 잠봉뵈르이다.

'타르틴(Tartin)'의 잠봉뵈르를 맛보고, 버터와 햄만으로도 이렇게 풍성한 빵맛을 느낄 수가 있구나 하고 놀랐었는데, 가격이 너무 사악한지라 벌이가 없는 지금은 망설여지는 메뉴이기도 했다.

지난 주 은마상가에 장을 보러갔다가 분식 집 앞에 있는 '압구정샌드위치'라는 곳에서 잠봉뵈르를 보고 냅다 거둬왔다. 그나마 가격이 착했던 탓에.




잠봉뵈르.


프랑스 국민샌드위치라한다. 프랑스 이즈니버터와 델리햄의 만남. 고소하고도 중독적인 맛.

빵과 어우러지며 바삭한 바게트의 풍미를 그대로 살려주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샌드위치 안에 아무리 많은 재료를 넣는다고 해서 샌드위치가 맛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속에 있는 채소와 소스가 터져 흐르면서 맛을 느낄 수 조차 없게 된다는 것을 대학 때 자취하면서 직접 해 먹은 샌드위치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해 잠봉뵈르는 버터와 햄만을 넣었을 뿐인데 더 중독적이고 깊은 맛이 난다. 샌드위치 맛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속에 있는 속재료가 아닌, 빵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게 조화시켜 주는 한 두가지라는 것이다.






작은 아이가 지난 겨울까지 다니던 10개 가까운 학원의 대부분을 끊고 홈스쿨을 시작한 지 두달 째 접어들었다. 이러한 공부의 시작은 학원에 대한 회의감과 줏대 없던 나의 학습관에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아이의 공부그릇 보다 훨씬 더 막대한 양의 학원과 공부량을 집어 넣는데 한계를 느꼈던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홈스쿨을 시작하고 보니 아이나 나나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에만 밀어 넣었을 땐, 사실 어떤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할지 체크하질 못했었다.

왜냐.. 사람 심리라는 것이 그 막대한 돈을 쳐들여가면서, 잉여의 필요로 하는 노력에 대해 분명 본전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으리라. 가끔씩 학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아이가 물어왔을 때에도 학원 가서 해결 하라는 식으로 대처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들어간 돈에 대한 억울함이 없었기에.


지금은 '학원'이라는 족쇄를 떼어 내었으니, 이 곳 대치동에선 '역행자'가 된 것과 다름없다.

제아무리 굳건한 이단아라 할지라도 불안감을 떨쳐버릴 순 없다. 아무리, 아무리 믿음을 갖자고 외쳐대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람이고 '엄마'이다. 결국은 내 아이 잘 되자고 시작한 일이므로 나 역시 무거운 책임감이 들 수 밖에 없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 졌으니, 내가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이런 쫄깃함! 참 오랜만에 느껴본다.


요즘은 아이가 부족하거나 해야할 부분을 내가 발벗고 나서서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공부해 나간다. 다행히 아이도 아직까지는 학원보다 엄마와 함께 하는 공부가 더 낫다고 한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나의 아이는 학원가서 받는 스트레스가 나와 함께 하는 공부보다 더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역시 마냥 홈스쿨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역량이 미치는 그 범위까지,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학원이 필요해서 가겠다고 하는 그 때까지 '엄마'라는 그 무거운 책임감으로 지금처럼 해 나갈 계획이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할지는 모르겠다. 또한 '후회'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로 나를 옭죄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내가 판단하는 이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답을 낸 이상, 아이와 나의 힘이 임계치에 다다를 때까지는 한 번 해 볼 생각이다.




10개 이상의 샌드위치 속재료를 꾸역꾸역 집어 넣는 것보다 샌드위치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빵의 맛을 살리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 두 개의 필요한 버터와 햄이었음을 알게 해 준 '잠봉뵈르'를 먹으며 오늘도 나는 나를 응원해 본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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