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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May 04. 2023

‘세계로’를 외치다!!

<여행의 의미>

혹시 SBS 'TV 퀴즈미팅'을 기억하는가.


일요일 아침 10시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게 시청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1996년 정도)


남녀 대학생들이 나와, 즉석에서 퀴즈를 풀며 미팅이 이루어지고 커플이 되어 팀을 이룬 남녀 대학생은 우승시, 세계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거머쥘 수 있는 특별하고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요즘이야 해외여행이 일반화 된 현상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 배낭여행은 소수의 사람들만 부릴 수 있는 여유였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대학생이 세계 여행을 한다는 것은 꽤나 희소한 일이었다. 몇달을 열심히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가는 학생들도 있기는 했었지만 말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교지편집위원회에서 학교 책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교지편집실에서 책자에 올릴 기사를 쓰며 정신없이 교정을 보고 있던 그 때에, 갑자기 같은 과 친구가 급하게 나를 찾아 왔다.

몇 명의 아이들이 그 프로그램에 신청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예기치 않게 사정이 생겨 불참하게 생겼다며, 녹화 당일 내게 ‘땜빵’을 요청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당시 내 복장이 책 만드느라 충무로를 오가며, 발간에 여념 없었던 때라 하고 다니는 꼴이 정말 ‘가관’이었다는 정도.

사실 그 프로그램의 애청자로서 직접 참관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날의 꾀죄죄한 의상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여학생 50명이나 나오는데, 설마 카메라에 비춰지겠어? 그냥 끝 언저리에 앉아서 퀴즈 푸는 척 하다가 오면 돼! 제발…


그 친구는 그렇게 나를 설득했고, 나는 얼떨결에 우리과 여학생 4명과 함께 SBS 방송국을 향했다.

무언가 찜찜하긴 했지만, 신기하고 생소한 경험을 할 생각에 설레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자 대학생 7명이 스튜디오 전면에 배치되고, 여자 대학생 50명이 마주보는 자리에 계단식으로 착석했다. 나는 맨 뒤쪽 카메라에도 잡히기 힘든 곳에 자리를 잡았다.

커플이 되는 방식은 소수인 남자 대학생들이 여자 대학생들을 쭉 한 번 보고는 본인이 괜찮은 상대를 콕 집어 자신의 커플로 뽑는 방식이다. (이후 이런 방식으로 말이 많았고, 구설수에 오르다 얼마 안되어 없어진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중간에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 커플이 되지 못한 남아 있는 여학생들 중 퀴즈를 제일 먼저 맞춘 사람이 현재 커플이 된 한 명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들어가 퀴즈를 풀며 세계 여행의 기회에 도전할 수 있게 했다. 

당연히 나는 조용히 퀴즈를 푸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전광판에 나의 이름이 커다랗게 뜨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연이어 사회자였던 최선규 아나운서의 입에서 불리어진 또렷한 나의 이름 세.글.자.


결국 나는 커플이 되어 있던 한 명의 여대생을 밀쳐내고 그 자리에 들어섰다.

어떻게 퀴즈를 풀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단지 TV브라운관에 비춰질 내 모습에만 촉각이 곤두서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었다.

어찌 저찌 상대 남학생과 퀴즈를 풀다보니, 웬걸.. 6팀을 모두 제치고 1등까지 손에 거머쥐고 말았다.


규칙은 1등을 하면 하와이행 비행기표 티켓이 주어진다.

허나, 다시 ‘세계로!!’를 외치면 마지막 퀴즈를 풀어내야 한다. 이 문제에서 틀리면, 제주도행으로 꺾이는 것이고, 맞추면 한 단계 올라가는 유럽행 비행기표를 받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전을 외친다. 방송을 위해서도, 유럽 여행에 대한 로망을 위해서도 말이다.


SBS ‘TV 퀴즈미팅‘(1996년)


결국, 운 좋게 문제를 맞췄고 유럽행 아시아나 비행기 티켓을 들고 내 생애 최초 유럽 땅을 밟게되는 행운을 얻은 경험이 있다.


그렇게 얻어낸 첫 해외여행.

나는 나의 친구들과 함께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고, 30일간의 기나긴 유럽 여행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어떻게 온 곳인데, 게으름을 피우기엔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이 때부터 나의 해외 여행에 대한 '부지런함'이라는 강박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30일 동안의 긴 대장정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세상에나 몸무게가 5키로 가량 빠져 있었다.




결혼 후, 역마살이 낀 남편 덕에 3번의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게 되어 해외를 숱하게 오갔다.

주재원 생활 안에서도 여행을 좋아했던 우리 가족은 전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며, 값진 경험과 많은 추억들로 삶을 채우게 된 점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남편과 나의 성격상 여행을 가게 되면 잠시라도 쉬지를 못하고 더 보고 더 먹고 해야 직성이 풀렸던 탓에 우리 여행의 ‘결’은 늘 바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한참을 참아왔던 여행!

첫번 째 선택지로 가까운 나라 일본을 택했다.


내가 이번 오사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던 건, 순전히 둘째 아이 때문이었다.

요즘 초등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중 ‘Sanrio(산리오)’를 아는가.

한 명 걸러 한 명씩 작은 아이의 친구들이 일본 여행을 갔다가 산리오 매장에서 여러 학용품들과 인형, 소품들을 쇼핑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내 아이의 로망이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직구하려면, 왜그리 비싼지 현지 가격의 2~3배는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그간 엄마와 함께 홈스쿨을 열심히 해 준 아이가 기특하기도 했고, 맘 속으론 많이 부러워했을 법도 한데, 선뜻 가자고 졸라대지도 않는 아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굴뚝 같았다.

이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홈스쿨 하는 동안에 당분간 들어가지 않을 학원비로 처음엔 ‘존리’님의 말대로 적립식 펀드라도 들어줄까 싶었는데, 결국 아이가 나중에 더 뜻깊게 남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의미있을 거란 생각에 일본 여행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고, 지난 연휴에 뜨고 말았다.


이번 여행은 주제가 명확 했다.

맛집 탐방과 산리오 매장에서 아이가 마음껏 쇼핑하도록 하게끔 하는 여행.


우리가 3박 4일 있는 동안, 곳곳의 산리오 매장 5~6군데를 매일같이 돌아다녔다.

하루 2만 보는 기본이었는데, 힘들기도 할 만한 작은 아이는 힘든 기색도 없이 제대로 즐기는 것으로 보여 나 역시 뿌듯했다.

끼니 때마다 줄서는 맛집을 남편이 미리 알아와 준 덕분에 질 좋은 정보로 입도 호강할 수 있었다. 역시나! 먹다가 죽는다는 오사카의 음식은 과히 우리 가족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큰 아이는 아이대로 음식에 굉장한 만족을 느꼈으며, 작은 아이는 본인이 그렇게도 원했던 산리오 매장에서 마음껏 원하는 학용품과 소품들을 쇼핑하며 플렉스 했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남편과 나는 흐뭇할 수 밖에 없었으니, 우리의 이번 여행은 꽤나 즐겁고 재미있는 여행이었음엔 분명했다.


아이들이나 남편, 그리고 나도 이번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대학교 처음 해외 여행 그 때부터 쭉 이어진 습관처럼) 시간이 아까워 뭐라도 구경하려는 악착같은 심보가 완벽하게 빠진 본능에 충실한 여행이었던 탓일까.

저환율의 영향으로 꽤나 만족스러운 쇼핑이 한 몫 했던 탓일까.

아님, 오랜만의 해외 여행으로 인한 탓이었을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기존 여행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던 이번 여행이 내가 처음 뜻했던 것 처럼 우리 작은 아이에게 값지고 의미 있던 여행으로 추억되길 조용히 바래 본다.


오사카 한큐백화점 산리오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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