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네~ 그래서요?
체크 패턴을 완성시킨 붉은색, 흰색, 검은색의 컬러 팔레트.
100년이 넘은 영국 헤리티지의 대명사 패션브랜드 버버리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문양이다.
요즘은 꽤나 버버리의 체크 패턴에 눈이 간다. 나이가 들었다는 방증일까.
물론, 최근엔 다양한 디자인으로 발전하여 전세대를 아우르는 브랜드가 되었다.
어른들은 물론이거니와, 버버리 키즈를 입은 아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지난 주, 작은 아이가 최근에 친해진 아이의 엄마가 느닷없이 카톡이 왔다.
자신의 딸 생일이라며, 함께 브런치를 먹자는 말과 함께.
주말을 이용하여 근처 브런치 카페에서 첫 대면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고학년부터는 이렇게 아이들 엄마와 새로 대면식하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코드가 맞는 저희들끼리 무리를 지어 노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저학년 때처럼 엄마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거의 전무해진다는 것이다.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것이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외투부터 명품을 휘감고 있었으나,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은 다소 차갑게 보여졌다.
그녀와 함께 나온 작은 아이의 친구는 엄마의 유전자를 닮았는지, 앙상한 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의 아이였다.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그 아이의 모자 안쪽 부분과 소매를 걷어 올려 코트의 내피가 보이는 부분은 아주 익숙히 보아 왔던 그 체크 패턴의 문양이 있었다.
딱 봐도 100만원이 훌쩍 넘을 만한 가격의 버버리 코트.
큰 아이가 어렸을 적, 입이 짧아 늘 왜소하고 짝 말라 붙어 늘상 코트나 점퍼를 사면 2~3년은 거뜬히 입혀 보았던 기억으로, 과연 이 아이가 입은 비싼 코트의 향후 미래 착용 기간을 자동반사적으로 계산해 보았다.
내 가정 경제사도 아니면서,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과연 그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살짝 궁금해졌다.
알고보니, 이 여자는 직업이 한의사.
강남역에 꽤나 규모있는 한의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레 매출 규모를 듣게 되었고 왠만한 사업가 만큼 벌어들이는 소득에 내심 놀랐었다.
이 곳은 무늬만 전문직인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입이 쩍쩍 벌어질 만큼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진정한’전문직 고소득자들의 집합체 인 듯.
직업을 물어보기가 무섭게 어쩜 주변의 학부모들은 죄다 ‘사’자가 들어가는 양반들인지..
오늘은 저희가 내는 것이니, 마음껏 시켜 봅시다.
OO는 어떤 거 먹고 싶니?
작은 아이와 나는 일요일 아침을 근사하게 얻어 먹었고, 우리 아이가 준비해 온 선물을 자신의 친구에게 건네며, 브런치 타임은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그녀의 딸에게 생일축하 인사와 함께 그 아이가 걸친 근사한 옷에 대한 칭찬의 말로 헤어지려는 찰나,
뜬금 없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우리 딸, 버버리 입혀요~!!”
네네~그래서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그 정도 소득이면 사입힐만한 걸까??-순간 든 생각)
이 곳 대치에서도 겨울이면 몽클레어와 캐나다구스 로고가 판을 친다.
중 고등 학생은 더 심하고, 요즘은 초등학생들의 명품 향연도 꽤나 줄을 잇는다.
어른도 사입기 버거운 금액의 명품 브랜드의 옷들을 과감하게 사주는 저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물론, 정말 돈을 많이 버는 고소득자일 수도 있다.
소득을 차치하고서라도 길어야 몇 년인 효용 가치의 명품 옷들을 사주는 것이 ‘하나뿐인 내 자식을 위한 일’이라는 분위기를 덮어버리기에 충분한 것일지 의문스럽긴 하다.
코트 한 벌에 700만원.
그래도 아동 명품이 흥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성인 명품 옷값 못지 않게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는데도 몇 벌 안 되게 유통되는 탓에 품절을 기록한다고 한다.
아동 신상 패딩을 사려면, 10월에도 늦는다며 9월부터 사들여야 한다는데.
국내 합계 출산율은 2분기 기준 0.75명.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데에도 유아동복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고가 브랜드의 명품 유통이 커진다고도 해석할 수가 있다.
저출산 시대의 한 명의 자녀를 둔 집이 늘면서 자연스레 ‘텐 포켓’ 현상이 두드러진 탓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 양가 조부모, 삼촌, 고모, 이모, 친구 등의 물질적인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현재 소비시장의 ‘큰 손’이라고 할 수 있는 MZ세대.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중시 여기는 문화적 특성이 있어 이들이 부모가 된 것도 단단히 한 몫을 했으리라.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초등학생 손녀에게 ‘몽클레어패딩’을 입혔다는 이유로 꽤나 비난을 받았던 것과 참으로 대조되는 모습이다.
요즘이야 중고거래, 리셀 시장이 커져 상대적으로 구매 부담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경제에 대한 아무 개념이 잡히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 과한 명품을 소비하여 입히는 것이 과연 자신의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일지 되물어 본다면,, No!!
아이들도 부족함이 있어야 단단해질 수 있고, 더 채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발전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니까 말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 작은 아이도 명품에 꽤나 관심을 갖더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가방이며, 옷의 로고를 보고 왠만한 명품을 모조리 알아 맞추는 모습이 사뭇 의아스러웠었는데, 이 친구의 영향도 분명 있었을 테다.
아이의 말로는 요즘은 명품의 옷과 악세서리들이 등장하는 게임도 있다고 했다. 이러니 자연스레 명품이 친근해 졌을 테고 , 당연히 그 가격을 알고도 남았을 건데..
부모들의 명품선호 현상.
자신들의 대리만족과 과시욕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이러한 태도가 결국은 아직 미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전염되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짐을 미리부터 지어주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될 뿐더러,
우리 아이들에겐 상식이 넘어가는 금액의 명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사주는 어른들 탓에 어렸을 적부터 명품을 접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지나친 소비지향적인 태도가 왜곡된 경제관념을 키워 사회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