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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Oct 03. 2023

'E'가 자랑거리일까요?

I와 E사이에서

시원한 바람 냄새.

조금씩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오래된 나무들,,


요즘 아침의 전경이다.

이제 확실히 가을이 온 것 같다.


좋은 계절이다.

가을이 좋다.


그.런.데,,


왜 하필 이렇게 환상적인 계절에 '추석'이라는 명절이 있는걸까.




2002년 역사적인 월드컵의 함성이 끝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갓 시집 온 나는,

한 달에 두어번은 주말마다 시댁에 갔었고, 자주 마주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시형님.


남편은 아들만 두형제인 가정에 둘째 아들이었다.

손윗동서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고, 키는 작았으며 나보다 5년은 젊어 보였다.

중저음의 내 말투와는 다르게 하이톤의 방방 뜨는 말투였으며, 가야금을 전공한 예체능인이었다.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 그녀의 태도는 늘 상냥했고, 시댁이라는 어색한 분위기 안에서 나름 말벗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여자 형제가 없었던 나는 결이 달랐던 그녀가 친근했고 일말의 '의지'하고픈 생각도 있었으리라.


괜찮아보이기만 한 그녀를 왜 시댁에서는 두손두발 다들었다고 말하는지 그 때까진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남편으로부터 뜬금없는 말을 전해듣게 되었다.


"어머니! 동서는 시댁에 와서 버릇없이 두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어요. 눈치도 없이 서방님이랑 손을 잡고 있질 않나.. 게다가 저한테 가끔씩 말까지 놓네요. 사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시집 올 때도 어머님 이불 한채 안해오고 대신 맞지도 않는 한복 한 벌 떡하니 보내는 그런 경우가 어딨어요? 어머니께서 따끔하게 혼내셔야 해요!!"


제대로된 뒷통수였다.


"진짜 형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해보자면, 두다리를 뻗고 앉아 있던 적이 적어도 내 기억으론 없다. 당시, 시댁에 갈 때마다 늘 치마를 입고 갔었던 터라, 모으고 앉아 있다가 쥐가 나기 일쑤여서 쇼파에 많이 앉아 있었고, 남편이랑 나는 서로 샤이한 성격 탓에 남들 앞에선 대면대면 했었으며(그런데 손을 잡고 있었다니.. 헛것을 본건가, 아님 소설을 쓰고있는 것일까), 한 살 많은 형님이긴 했지만, 가끔씩 말할 때 편하고 티키타카가 잘 맞는 것 같아 혼잣말로 '아~ 그렇구나!' 말투를 몇 번 썼던 기억이 전부다.

게다가 결혼 당시, 어머니께서 이불이 집에 너무 많으니, 이불은 생략하자는 말씀에 그냥 지나치기 아쉬어 결혼식에 입으실 (고급 한복집에서 이불값보다 더 비싼) 고급 한복으로 대신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리 말한 그녀는 결혼 당시 친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이 언급한 이불은 커녕, 예단 하나 없이 결혼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나로서는 이중적인 그녀의 행태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싫은 소리 한 번 안하시는 순한 분이셨는데,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형님에게 둘째인 나를 혼낼 이유가 없다 하셨고, 형님이 한 모든 말을 둘째에게 전했다고 하셨다 한다.


그로부터 몇 일 후,

시댁에서 만난 형님은 나를 조용히 커피숍으로 불러내었고,


처음 한 말은,,


"응.. 나는 완전한 외향인이야. 밝고 명랑하지. 게다가 뒤끝도 없어. 사람은 실수를 하는 동물이잖아? 이번 일은 내가 실수 했다고 생각해. 앞으로 나를 '언니'라고 불러. 그리고 말도 놓고!!"


그 말 이후, 시어머니에 대한 듣도보도 못한 험담을 두어시간 늘어 놓았다.

누가 듣더라도 비상식적인 얘기들로 말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듯했다. 그래서, 결론은 '너'와 '나'는 동지다. 시어머니에게 대적해야 할 동지.


어머니한테 한 방 먹은 그녀는 이후 엄청나게 삐져서 어머니와도 말을 오랫동안 섞질 않았고, 시댁에 시아주버니와 함께 꾸역꾸역 올 때마다 어머니와의 분위기는 한참 냉랭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첫 마디.

외향인이라는 말. 사과를 하려고 나온 거 같긴 한데, 본인이 외향적인 성격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엔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의기 양양하게 외향적인 성격을 전면에 배치하면 사과하고 싶지 않은 '사과'라는 쪽팔림이 상쇄되리라 생각했을까.


외향성이 내향성보다 항상 우위라는 생각은 왜 만들어진걸까.

요즘에서야 맹신하는 'E'와 'I'라는 개념이 당시엔 없었던 탓에 본인을 외향인이라고 칭했을 거다.

그런 상황이 지금이었다면, MBTI가 무슨 대단한 스펙인양 내세웠으리라.




대한민국 며느리라면 누구나 '시'자 얘기로 책 두어 권은 너끈히 만들 분량이 채워질 진데, 사실 지난 20년 두 형제의 두 며느리 사이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말로 다 토해내지 못할.


어머니의 중병으로 인해 병원비문제(동서네가 돈을 더 버니 돈을 더 내라. 우린 애아빠가 애들 치킨값 없다고 못사준다-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에 호캉스 간 사진 올리고), 전체 공개로 한 SNS에서 나를 세상에 없을 나쁜 며느리로 둔갑시키는 일은 다반사였으며,(그녀를 아는 주변인들의 악플과 댓글, 졸지에 난 X년으로 댓글 달림)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내 일가 친척들에게 나를 몹쓸X로 만든 경우(말 몇번 안섞어본 친척이 어머니 병실에서 나를 훈계했던)를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둘 뿐인 형제 사이가 멀어지는 걸 원치는 않는다.

일개 며느리들이 뭐라고.

그래서, 이번 명절에도 꾸욱 참고 ‘찐I’형인 내가 먼저 전화를  건넸다.


형님! 잘 지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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