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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Sep 05. 2020

기다리는 마음

    새벽녘, 일출과 함께 세상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는 시간. 그러나 세상은 아직 검푸른 베일에 싸인 듯 어스름이 짙게 깔려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길가는 작은 기척마저 또렷이 들릴 만큼 고요하다. 나는 이 적막에 파문을 일으키며 요란스레 집을 나선다. 급히 차려 입어 어딘지 단정치 못한 옷매무새를 있는 대로 다듬고,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바삐 걷는다. 그렇게 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를 탄 뒤, 휴, 가쁜 숨을 돌린다. 이른 시간대라 좌석이 많이 남아 수월히 창가 자리를 잡는다. 버스는 달리고 서기를 반복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 빠르고 느리게 스쳐가는 어둑한 새벽 풍경이 보인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커다란 건물에 위치한 병원. 주황색 조명이 조화롭게 빛을 내는 병원은 은은하고 포근하기까지 하.  아래 띄엄띄엄 소파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들 알은체 없이 제 할 일을 하며 앉아 있지만 그들에게 묘한 동지애를 느낀다. 다들 바쁜 일과 시간을 피해 일찍부터 이 곳에 온 사람들. 누군가는 희망, 누군가는 초조, 누군가는 실망, 각기 다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겠지 모두 같은 꿈을 꾸고 있음을 안다. 그것은 아기를 갖는 .


     년 남짓 주기적으로 맞이했던 병원 가는 아침 이젠 어렴풋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출근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발하여 진료를 보고, 진료를 마치면 늦을 새라 종종 대며 회사에 출근하던 때. 때로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지치고 억울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고생이 아니다. 출산을 꺼린다는 세태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난임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회사 같은 층, 열 안 되는 여직원 중 세 명이 같은 고민을 공유했다. 이렇듯 난임은 많은 부부들이 겪고 있는 보편적인 일이며, 그렇기에 상처 받는 사람이 주변에 있지 않을까 함부로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내가 겪었다 하여 난임 부부들의 각기 다른 사정과 고통 안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보통날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마음 저미는 순간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내게 그 순간은 지막 배아 이식 결과 통보받은 며칠 뒤에 있었. 마지막 이식 결과가 있던 날은 예전비해 유난히 초조했다. 이틀 전 아침, 임신 테스트기에 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 임신 극초기에 종종 있는 심한 빈혈기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전날 밤, 다시 검사를 했더니 테스트기에 한 줄만 나타나는 것이었다. '밤에 한 테스트라 정확하지 않은 거야'라며 좋게 생각하려 했지만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튿날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다녀온 아침부터 통보 전화가 오기로 한 늦은 오후까지 시간은 너무도 더디 갔다. 더디 가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 혼자 회사 마당 한 바퀴를 돌아도 보고, 옥상서 바람도 쐬어 보았지만 다른 것에 좀처럼 집중이 안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걸려온 전화. "수치가 0이라 비임신이에요.". 임신이 아닐 수 있다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 또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시험관 이식을 할 때마다 종류만 달랐지 매번 유산으로 마무리되었으니 항상 줬다 도로 뺏는 . 이번도 그러면 너무한 거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여느 날처럼 임신을 위해 자제했던 맛난 음식을 잔뜩 먹으며 우울을 달랬다. 그런데 그 날은 기분이 나아지질 않고 자꾸 화가 나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 잠도 오지 않았다. 늦은 밤 애꿎은 동생을 전화통에 붙잡고 울었다 웃었다 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줬다 뺏느냐고.

    수험생이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경우에도 다음 회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불안을 줄이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새로이 각오를 다지며 임신을 위한 계획을 다시 세웠다. 도움이 된다는 영양제와 각각의 권장 복용치를 조사하고 정리하였다. 건강에 좋은 재료들로 구성된 요리 위주로 식단도 만들었다. 운동 계획을 다시 짜고, 한의원 다닐 때 매일 하던 배 뜸도 다시 하기로 했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보자', 내 마음속은 오기로 가득했다.

    그 주 주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계획을 남편에게 다. "이 영양제는 꼭 먹어야 한대. 술은 나쁘니 되도록 자제하면 좋겠어." 등을 얘기하며 협조를 구했다. 거기에, 남편을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케 하려는 의도였는지, 장기간의 시험관이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회사 후배의 염려 때문인지 생각지 않게 이런 말을 덧붙이게 됐다.


    "나는 이번 해에 전력을 다할 거야. 그러고도 안 되면 내년부터는 인위적인 노력은 그만하려고 해."


    그런데 이 말을 뱉고 나자 별안간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놀란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겠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눈물의 이유를 듯했다. 그것은 그동안 외면하고 지냈던, 내 생애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난임은 있지만 불임은 없다는 말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배아 이식 기술이 이만큼 발전한 시대에서 어떻게든 노력하면 임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간혹 아기 갖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얘기도 들려왔다. 의지의 문제라고 여겼다. 시험관이든 뭐든 의지가 거기까지, 그리고 언젠가 의지가 되살아나면 다시 노력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무서웠으니까. 그러고는 잊었다.  머릿속 기억하기 힘든 곳에 그들의 사연을 구깃구깃 접어 봉인해버렸다. 그런데 임신을 위한 인위적 노력을 중단하겠다는, 예정에 없던 선언과 함께 외면해왔던 그들의 이야기가 뇌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건강상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의지'라는 한 마디로 퉁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이 보이는 듯했다.  또한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들처럼 결단을 내려야 때가 정말 올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메었다. 슬픔은 북받친 눈물이 되었다.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극심히 슬펐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전에 아이를 갖으려 그렇게 노력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생각지 못한 물음얼버무려 대답하고는 곰곰이 그 문제를 되짚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냥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알 필요가 없어진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았.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임신이란 본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처럼 굳이 생각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본능적 욕구. 아기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들나처럼 본능에 준하는 절실함으로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 생각하니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들애틋하고 안타깝다. 지금도  진료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가득히 있던 병원의 모습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들에게 연대의식을 느낀다. 연대감으로, 아기를 바라는 그때의 나와 같은 사람들, 기다림에 지쳐 있을 마음들에 이런 말을 전해 본다. "고생하십니다. 기다림 끝에 꼭 축복 같은 아기가 오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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