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3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eaway Oct 03. 2020

환불을 온전히 마쳐낼
유재석의 ‘흡수력’

-MBC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리뷰-



“올해 MBC 연예대상 트로피에는 ‘유재석’ 석자를 미리 새겨놔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2020년 MBC에서 유재석의 활약은 대단했다. 사실, 나의 10대 학창 시절부터 30대가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 유재석의 인기가 원탑으로 지속될 줄은 몰랐다. 나아가 지금까지 유재석의 대체재가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가만히 그의 인기와 롱런의 비결은 무엇일지 고심했다. 유재석만 만나면 각 캐릭터가 자신의 최고치를 뽐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의 인기비결은 우리가 흔히 그에게 느끼는 배려도 선함도, 꾸준함도, 겸손도 아닌 그의 ‘흡수력’이었다. 자칫 정신없어 보일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에서도 그는 그만의 ‘흡수력’으로 매 상황에 유연했다.     


초여름 5월부터 시작한 ‘싹쓰리’부터 지금의 ‘환불원정대’까지 유재석은 연달아 5명의 캐릭터를 상대하고 있다. 단순히 일회성 게스트가 아닌 긴 여정의 프로젝트를 함께 해야 하는 만큼 유재석과 다섯 캐릭터의 조화는 중요했다. 이런 조화의 8할은 유재석의 ‘흡수력’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만나는 캐릭터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흡수력 즉, 처세술은 보기 편한 조화를 만들어내는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맞춤형 흡수력: 둥굴레 차부터 보이차를 지나 피자까지


환불원정대를 처음 마주하던 날, 그는 처음부터 넷을 한 자리에 모으지 않았다. 먼저,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캐릭터별 그가 대접한 먹거리들은 그의 배려를 돋보이게 했다. 둥굴레부터 보이차를 지나 피자까지.


세상 모든 차(茶)가 다 있는 듯 건네보는 질문

항상 원하는 것이 분명한 효리에게는 선택지를 주지 않고서 “어떤 차를 원하느냐?”며 다소 광범위한 질문을 던지는 다정함을 보였다. 유재석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보이차 있나요?”라고 물으며 본인의 취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맞춤형 테이블로 가득해진 분위기는 더없이 편안했다. 특히 이곳에서 이효리는 유재석이 없던 환불원정대 첫 회동 날 보다 더 많이 웃고, 지체 없는 개그를 던지며 그녀가 편안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던져도 흡수해줄 판이 준비됐다는 믿음이 그녀를 무장해제시켰다.     


다소 지엽적으로 화사에게 꼭 맞는 선택지를 던져주는 지미유

낯을 가린다던 화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효리와 같은 장소였지만 보이차를 대접했던 것과 달리 화사에게는 둥굴레차를 건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은은하고 둥글둥글한 화사에게 어울릴만한 둥굴레를 먼저 선택지로 던져주고 그녀의 선택을 유도했다. 역시나 둥굴레 티백을 열심히 우리며 둥굴레 홀릭이 되어버린 그녀였다. 그런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어느새 유재석은 화사마저 은은하게 흡수해나갔다.      


교포 제시가 좋아할 만한 피자집을 미팅 장소로 선택한 지미유

교포 출신 제시에게는 다소 어눌한 한국말에 맞장구를 치며 평소에 쓰지도 않았던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만들어 나갔다. 거기에 제시를 겨냥한 피자집은 제시를 흡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제시는 온몸으로 피자에 감탄하며 연신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뿜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엄정화에게는 앞선 장난스러움을 잠시 뒤로 한 채 “예능계엔 이경규, 가요계엔 엄정화 같은 상징이 계셔주셔야 한다”는 존경을 표하며 그녀가 낯선 세대들에게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끌어주었다. 화사에겐 둥굴레차를, 효리에겐 보이차를, 제시에겐 피자를, 엄정화에겐 칵테일 바의 진지함을 대접하며 그는 같은 듯 다른 그녀들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밀당 흡수력모든 것을 흡수해내지는 않겠다!


‘싹쓰리’와 ‘환불원정대’의 멤버 5명 이외에도 이번 ‘환불원정대’의 매니저 지원자를 마주했을 때, 그의 ‘흡수력’은 빛을 발했다. 앞선 ‘흡수력’을 바탕으로 각 캐릭터에 따라 자유자재로 면접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이 전에 언급되지 않았거나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원자들도 각자의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며 그의 흡수력을 믿고 자신의 무언가를 마구 분출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캐릭터를 흡수하되 다 안고 가지는 않았다. 


TMI를 뽐내다 잽싸게 뺨을 맞아버린(?) 조세호

유재석은 지원자가 허심탄회하게 ‘환불원정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했다. 그들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으며 경청하는듯한 태도는 그들이 마음을 놓고 자신을 드러내도록 했다.      


처음에는 지원된 사실조차 몰랐던 조세호로서 이 자리가 약간은 떨떠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바로 조세호는 유재석에 흡수력에 말려들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기가 센 환불원정대에게 핸들링이 되고 싶다’라는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 취해 과한 열정을 보이며 일본어 능력까지 선보이던 그를 ‘약간의 손맛’으로 진정시켜 버리기도 했다. 유재석은 이와 같은 상황극으로 적절한 밀당 흡수력을 내비치며 모든 것을 받아내지는 않음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미유에게 멜로디언 호스를 건네는 정재형

정재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재형이라는 사람과 멤버들과의 관계, 평소의 성격, 자원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지원 동기까지. 유재석은 정재형에게서 모든 것을 끌어내며 정재형이라는 사람을 확실하게 선보였다. 유재석의 흡수력 덕분이었다. 감히(?) 지원자가 면접관에게 멜로디언을 불어달라며 부탁을 하게 하는 말도 안 되는 편안함도 제공했다. 기분 좋은 분위기에 정재형은 매니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유재석의 흡수력이 지원자를 너무나도 편안하게 했던 탓일까. 모든 것을 뱉어내던 정재형은 충격적인 사실마저 고백했다. 매니저의 필수요건인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 곧바로 운전면허가 없다는 정재형에게 곤란함을 드러내며 밀당의 진수를 보였다. 유재석은 정재형을 나무라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고 압박을 주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받아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면접장을 떠나는 내내 “ 실수한 거 있어?” “나 뭘 잘못했어?”하는 정재형의 질척임은 받아주지만 여전히 매니저에 뽑혔다는 확답은 주지 않는 그였다.      


유재석이 만난 상대들은 때로는 유재석을 만만하게 보기도, 때로는 유재석에게 쩔쩔매기도 했다. 이렇듯 상황 적절한 흡수력으로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 흡수력이 언제나 무한대였던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 알맞은 흡수 방법과 흡수량을 적절히 계산하여 상황을 밀당으로 이끌어나가는 것. 그것은 시청자마저 쫄깃함을 느끼며 웃음 포인트가 되곤 했다. 이러한 그의 흡수력이 ‘환불원정대’의 환불을 얼마나 잘 마쳐줄 것인지 앞으로 그에게 거는 기대가 더욱더 커질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후변화 같은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