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AD2100 기후의 반격> 리뷰
지구가 한계치에 도달했구나, 이번 여름을 나며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 것이다. 올여름 폭우는 예사 폭우가 아니었다. 태풍은 대기표 순번이라도 뽑은 듯 차례차례 한반도 남부를 강타하고 있다. 물리적인 물벼락을 한바탕 맞고 나서야 깨달았다. 기후 위기가 정말 코앞에 닥쳤구나.
그러나 기후 위기는 지금 막 시작된 게 아니라 이미 지구 곳곳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다. MBC의 2017년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AD 2100 기후의 반격>을 본 뒤에 알게 된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식량 위기와 전염병과 거주지 상실과 열사병을 인간에게 안겨준다. 독성 강한 꽃가루도. 어렸을 때보다 봄철 비염이 심해진 게 내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꽃가루의 독성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에 비례하여 올라간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1, 2화는 이러한 지구의 위기, 혹은 그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에게 닥친 위기를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보다 보면 겁이 난다.
하지만 겁이 나는 데서 그친다.
사실 기후변화가 인류에게 이러한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 혹은 이미 가져다주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무절제한 화석 에너지, 플라스틱, 육식 소비 습관이 기후변화를 가속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 역시 기후변화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교과서와 학습만화와 환경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를 통해 귀에 박히게 들어온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렇게 잘 알면서도 나는 전기 사용, 택배 주문, 육식 소비를 줄일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위기의식이나 죄책감만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게을렀다. 당위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데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전염병과 이상 기후의 시대에도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그 변화의 불씨를 지피는 데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예술 작품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방송 다큐를 예술 작품에 포함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큰 틀에서 여기에 포함하고 싶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이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하게 만들려면 그 안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기후 위기 시대의 공영 방송의 다큐멘터리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AD 2100 기후의 반격> 3화에는 전기 소비를 최소화하는 생활을 실험해보는 배우 황석정 씨가 나온다. 전기 없는 비전력 공방을 운영하는 후지무라 야스유키씨가 나온다. 태양열 에너지만으로 집안의 거의 모든 에너지 소비를 충당하는 PAL타운의 아오야기 씨 가족도 나온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오야기 씨 가족의 이야기였다. 옥상에 설치한 태양열 패널이 만들어내는 전기는 4인 가족이 충분히 소비하고도 남아, 남은 전기를 일본 전력 회사에 팔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전력 회사에 전기를 팔아 한 달에 내는 수익만 1만 5천엔, 우리 돈으로 약 15만 원. 나는 그걸 보고 ‘혹’했다. 대체 에너지가 환경에 도움만 되는 게 아니라 돈도 되네? 태양열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기만 하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초기 비용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기후 변화의 주범인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데다 돈까지 벌 수 있다는데!
황석정 씨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실험 초반 황석정 씨는 불편함에 몸부림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편의점으로 대피한다. 하지만 이내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삶에 적응해간다. 의식적으로 전자레인지 사용을 피하기 위해 아예 코드를 뽑아둔다. 조금 불편하지만 자발적으로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그에 표정에 완연히 드러난다. 그 표정에 또 ‘혹'한다. 중요한 것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이나 희생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멋짐이 있다. 그 멋짐의 반의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자 나는 기후 위기 시대의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AD 2100 기후의 반격> 1, 2화와 같은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조명하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작품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3화와 같이 좀 더 많은 사람을 ‘혹'하게 하는 작품 또한 필요하다.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삶, 플라스틱 프리의 삶, 육식을 줄이는 삶이 불편하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충족감을 안겨주고 더 나아가 이익까지 안겨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황석정 씨와 후지무라 씨와 아오야기 씨 같은 사람들의 얼굴을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소수의 완벽한 전사만큼이나 다수의 불완전한 대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 중 일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할 것이다. 그것이 설령 멋져 보이거나 돈이 될 것 같아서, ‘혹'해서 일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열 명이 되고 백 명이 되고 천명이 되면 지구의 온도는 조금 더디게 올라갈 것이다.
일본 환경장관 고이즈미 신지로가 UN 총회에서 했던 발언,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다뤄야 합니다”라는 발언은 한국 네티즌들에게 두고 두고 놀림감이 되었다. 물론 그는 어떻게 해야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 말 자체에는 아주 설득된다.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