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 리뷰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된다는 50세를 지칭하는 말로 하늘의 뜻을 알아 그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알게 되는 나이다. 마흔까지는 개인의 주관적 세계에 머물렀으나, 50세가 되면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2020년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과연 <mbc 뉴스데스크>도 진정한 지천명에 도달했을까?
몇 년 전, <mbc 뉴스데스크>는 불문율 같았던 9시 시간대를 버리고 8시로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그 후, 변화를 멈추지 않고 1시간이 훌쩍 넘는 80-90분으로 다소 파격적인 편성을 보이기도 했다. 나름의 명성을 이어왔던 <mbc 뉴스데스크>에게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선의 원리를 탐구하듯 당시 보도 국장이었던 현재 mbc 박성제 사장은 ‘깊이 있는 보도’를 핵심으로 삼으며, 바뀐 언론환경에 맞춰 그동안의 고집을 꺾었다. 이전까지는 보도하지 않는 것이 뉴스의 문제가 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짜여진 프레임과 가짜 뉴스가 더 큰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사실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시간을 확충한 것이다.
늘어난 시간으로 그들은 뉴스의 깊이를 더했다. 가짜 뉴스를 대적하기 위한 팩트체크 코너를 신설하고, 단순히 사건을 읊는 수준의 단신 뉴스보다는 기획취재나 탐사보도의 비중을 늘렸다. 최근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이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고급주택 세금‘에 관한 후속보도를 지속해서 편성하며, 취재에 진정성 있는 무게를 더했다. 뉴스데스크를 보고 있는 시청자에게 언론의 역할에 대해 더 고민해보고 결과적으로 진화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우연히 변한 게 아닌 그들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였다.
뉴스에 다양함이 들어섰다. 1시간 내내 앉아서 왼쪽엔 앵커 얼굴, 오른쪽엔 기사 사진을 띄우며 소식을 전하고, 전문가와 대담을 나누는 방식은 이제 진부하다. 뉴스도 어느 정도의 쇼맨십이 필요해진 세상이 됐다. 그런 쇼맨십은 뉴스의 구성으로 나타났다.
<mbc 뉴스데스크>의 쇼맨십은 뉴스 속 코너였다.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 취재를 구성하는 <제보는 mbc>, mbc 뉴스데스크만의 문제의식을 살린 기획취재 <바로 간다>와 <로드맨>, 탐사보도 <집중취재M>, 기사로 전해진 한 줄 혹은 주장의 진실 여부를 파헤치는 <팩트의 무게>, 매일 정치적 이슈를 앵커와 기자 간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전해주는 <정치적 참견시점> 등이 있다.
특히, 코너의 네이밍에서는 뉴스데스크는 여전히 변화의 변화를 거듭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같은 성격의 코너 일지라도 조금씩 코너의 이름을 바꾸며 항상 시청자들에게 더 잘 보이고 각인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듯했다. 팩트체크는 <새로고침>에서 <팩트의 무게>로, 시민의 제보로 이뤄지는 <당신이 뉴스입니다>는 현재 <제보는 mbc>로 바뀌었다. 나아가 무게감이 느껴지는 <정치적 참견시점>과는 달리 좀 더 가벼운 버전으로 <정치원샷>이라는 외전 코너도 추가했다.
세월이 흐르고 명성이 쌓여가는 만큼 고개는 빳빳해지고, 숙이기는 좀처럼 어려워진다. 내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뻔뻔해지기는 쉽고, 인정하기는 참 쉽지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지천명을 맞이한 뉴스데스크는 현명했다.
한 달 전, 9월 1일 뉴스데스크는 의료계 뒷 광고 의혹을 보도하면서 해당 영상에 이와는 무관한 자료 화면을 실었다는 유튜버 양띵의 항의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는 논란이 일어난 바로 직후에 이루어졌고, 확실한 방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방송화면에 대대적으로 알렸다. 물론 애초에 제대로 된 자료조사와 정확에 대한 경계심이 미비했던 지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들이 맞이한 혼란 속에서 겸손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긴 시간 동안 명암을 지나오면서 지천명을 맞이한 뉴스데스크도 아직은 완벽하진 못했다. 보도의 깊이를 더하겠다고 만들어진 기획 코너들은 다양했지만 지속되지 못했고, 시청자에게 온전히 기억되지 않았다.
<정치적 참견시점>과 같은 소수의 코너를 제외한 대다수의 코너들은 비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단발성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코너의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 코너들도 더러 나타났다. 이것저것 시도하고 도전해보는 자세를 나쁘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도전을 코너의 네이밍에만 주목해 대책을 세우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코너를 구성하는 아이템이 뉴스데스크에만 있다거나 다른 뉴스와 아이템은 같을지언정 아이템에 다루는 방식으로 차별화에 더 주목해야 한다.
가령, 오랜 시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지역 불평등 문제를 ‘서울민국’이라는 타이틀로 단독 아이템화 한 <로드맨> 코너를 들 수 있다. 지난 9월부터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서울민국’ 보도를 내고 있다. 시청자는 ‘서울민국’을 통해 전국 지방의 교육, 문화, 교통, 일자리 등 다양한 문제점을 다른 곳이 아닌 오로지 <mbc 뉴스데스크>에서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로드로 직접 달려가 만나는 다양한 시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이템을 구체화하는 보도 구성 또한 타 방송사과는 달랐다. 이는 결국 <로드맨>만의 정체성을 잘 구축해주었다.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진 나머지 뉴스데스크 코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방식이었다.
어쩌면 이런 아쉬움까지도 뉴스데스크의 진정한 성숙을 위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지천명까지도 시청자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뉴스데스크가 이순에도 만나면 좋은 친구임을 기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거만해지기 쉬운 체제에서 그저 그런 뉴스가 아닌, 시대에 뒤처지고 무감각한 뉴스가 아닌, 지금까지처럼 끊임없는 노력이 보이는 뉴스이길 바란다. 그것이 뉴스의 구성이든 보도의 형태이든 간에 언제나 똑같은 뉴스이기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더 나아가는, 움직임이 있는 뉴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