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를 보고
보는 내내 텔레마케터 알바를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누군지도 모르는 수십, 수백명의 짜증과 욕설을 자존감을 방패로 감내하다 하루에 몇 통 정도 솔깃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사실은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며 '실적'이란 걸 올리던 날들.
신입이라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명씩 뛰쳐나가는데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게 고졸에 별다른 능력도 없는 내게는 최선인 것 같아서 꾸역 꾸역 버티던 그 끔찍한 시간들.
결국 그만두고 여기 저기 전전하며 좌충우돌 하다 그나마 살만해 진 지금까지 왔지만, 내가 도망친 세상은 내가 없어졌다고 사라진 게 아니었으며 누군가가 내가 빠진 그 자리를 대체하며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어쨌든 부모님께 손만 벌리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던 나보다 더 안 좋은 사정일테지. 소희처럼.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부채감이 들었다. 밥벌이를 하겠다고 그런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딴 식으로 살거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으로 퇴근하고는 허구헌 날 술이나 들이붓는 삶을 살 때, 어떤 심정이 드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그냥 나는 거기서 도망쳐 나왔다고, 이제 내 시선이 닿는 곳에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 세상은 아예 사라진 것 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세상을 버티다 누군가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도 나름 그런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세상을 없애보겠다고 말로는 떠들던 이들을 믿어본 적도 있는데, 사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는 별 관심없었고 그래서 '아 그런 세상은 없어지지 않나보다. 그렇다고 내 깜냥이 내 힘은소 그런 세상을 없앨 정도는 되지 않으니 그냥 내 능력이나 키워서 내 주변 사람들이나 잘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했습니다. 그래도 그건 노력하니 되길래 나 정도 되는 인간이 이만하고 살면 되었지 하면서 살다가 아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