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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Knowledge
Dec 31. 2020
Do you wanna play a game?
블랙 미러 - '미움받는 사람들'을 보고
(이 글에는 블랙 미러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미움받는 사람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블랙 미러 시즌 3의 마지막 에피소드, '미움받는 사람들'에는 '책임의 게임 (Game of consequences)' 이란 이름의 게임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SNS에 #DEATHTO라는 해시 태그와 함께 타깃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름과 사진을 올리면 최다 득표자는 매일 오후 5시 이후에 제거되며, 타깃 선정은 매일 자정이 지날 때마다 새롭게 시작된다는 섬뜩한 게임이죠. 그러나 흔하디 흔한 해시태그 놀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하나 둘 이 게임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최다 득표자들이 실제로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멸종되고 있는 벌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벌레형 드론 'ADI'가 해커의 명령에 따라 타깃의 머릿속, 정확히는 뇌에서 고통을 담당하는 부위인 후배측 뇌섬엽을 파고 들어가 아주 고통스럽게 살해하죠.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공분을 살만한 짓을 한 이들이긴 했습니다. 장애인 보조금 문제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휠체어 탄 순교자'를 글로 모욕한 신문사 칼럼니스트, 생방송 중에 자신을 따라한 꼬마 팬의 영상을 보고 욕을 하며 지나치게 비난한 래퍼, 전쟁 기념비에 오줌 싸는 자세를 취하며 셀카를 찍어 올린 시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짓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죽어 마땅한 것은 아니며 그것을 심판할 권리가 ADI 해커에게 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망과 #DEATHTO 해시태그와의 연관성이 알려지자 게임의 참가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정의롭고 올바른 내가, 저 몰상식한 인간을 보며 느낀 순간의 분노를, 해시태그로 간단히 표현만 하면 내 손에 피 묻힐 일 없이 대신 이 세상에서 제거해준다는 매력적인 제안(?)에 혹한 것이겠죠.
그 모습을 보며 전 지금의 한국을 떠올렸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광고 수익이나 얻어보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이는 기사나 유튜브 영상, 이 행동은 그간 우리 집단에서 믿어온 것에 반한다는 수준의 논거, 심지어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더라 같은 것들을 증거로 채택해가며 재판을 진행 중인 법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고, 거기서 유죄 판결이 나면 그것만으로도 그 '죄인'에게 많은 이들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축약하면 #DEATHTO나 다름없는 비난을 퍼붓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슬프지만 '책임의 게임'이 여기서 열린다면 아마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에피소드의 뒷부분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투표에서 재무부 장관이 1위를 달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수사팀이 피해자를 살해한 ADI 내부에서 '책임의 대가'라는 제목의 문서 파일을 발견하고, 그곳에 담겨 있는 범인, 개럿 스콜스의 셀카를 토대로 사진 촬영 장소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그곳을 급습해 태우다 만 하드디스크를 확보하죠
그 하드디스크 내부에는 그간 #DEATHTO 태그를 사용한 모든 사람들. 정확히는 387,000명의 정보와 범인이 ADI 해킹에 사용한 해킹 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리스트가 함께 들어있는 게 꺼림칙했지만 형 집행 시각인 5시가 촉박한 상황, 수사팀은 ADI 통제권을 되찾아 오는데 집중했고 결국 5시 직전 통제권을 되찾아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안도할 틈도 없이 다시 전국의 ADI가 통제권을 벗어나더니 이번엔 리스트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DEATHTO 해시태그를 사용했던 387,000명의 머릿속을 향해 날아갑니다.
해시태그만 달면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신 살해해주겠다는 것은 미끼였을 뿐이고 사실은 그 해시태그를 사용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던 것이죠. ADI를 만든 회사의 창립 멤버였던 개럿 스콜스는 짝사랑하던 회사 동료가 생각 없이 올린 SNS 글 때문에 욕설 메시지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 프로젝트, 개럿 스콜스가 적은 '책임의 대가'에 적힌 표현대로면 '학대를 즐기는 인간의 약점을 제거하는 일'을 준비했던 겁니다. 섬뜩한 이야기죠?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기도 했습니다.
전 최근 페이스북 어플을 지웠고, 가끔 가던 커뮤니티에도 발길을 끊었으며, 유튜브 영상이나 웹툰에 달린 댓글도 가급적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지나치게 화가 나있는 사람들이 상대의 조그만 흠결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서로를 심판하려 드는 모습이 주는 피로감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느낀 순간에 내린 결정입니다.
화에 취하기 쉬운 세상임은 이해합니다. 나름 열심히 사는데 살기는 어렵고, 분노를 부추겨 이용해먹으려는 인간들은 도처에 넘치며, 매일 같이 화를 돋우는 소식을 전달해주는 인터넷 속도에 비하면 사회 변화는 끔찍하게도 느리니까요.
그래도 화를 그런 방식으로 분출하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건 옳은 일도,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도 아니고 개럿 스콜스가 느꼈던 것처럼 발전한 기술을, 누군가를 비난하고 괴롭히는 일에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깨닫기 어려운 사실은 아닙니다. 서로를 심판하려 드는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세상이 전에 비해 좋아지지 않았음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타인을 심판하려 드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화를 그런 식으로 분출할 때 드는 기분, 내가 옳고, 정의롭고, 깨어있고,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에 조금의 책임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그 기분이 주는 달콤함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약이 주는 쾌락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쾌락을 얻자고 한 행위들이 자신을 망치고 주변을 망치고 세상을 망치니까요. 그것이 과장된 비유가 아님은 굳이 이 이야기를 빌어오지 않더라도, 자신의 옳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는 이들의 과격한 말과 그 말에 찔려 상처 받고, 심지어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 한 이들과 그로 인해 우리가 슬펐던 순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하고, 현명하며 항상 옳기에, 욕먹을 만한 짓을 한 저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자격이 있으며, 그들의 허물을 널리 퍼트리고 타인에게까지 욕하게 부추기는 것을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꾸준히 착각할 이들을 위해 제가 좋아하는 곡의 가사 한 줄을 덧붙이며 글을 마칩니다.
죄 없는 자는 돌 던져도 된단 말인가?
돌 던지는 건 죄가 아닌가?
에픽하이 - Amor Fati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