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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Jan 17. 2020

회개와 믿음

무신론자의 눈으로 본 기독교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성당만 보이면 들어가서 회개했어.
우선 주님의 존재를 반신반의 해왔다는 것에 대한 회개,
그리고 그동안 내가 지녔던 미움, 불신,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회개.
근데 이제 그만 회개해도 된대.
내 말을 듣고 계셨던 거야.
거기서 펑펑 울어버렸지.




선영언니는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이자 동지다. 처음 언니를 만난 건 지금부터 약 7년 전이었던 것 같다. 업무 순서상 주로 내가 언니에게 일을 요청해야 했는데 나는 언니가 무서웠다. 당시 나는 그 회사에 이직을 한 지 일 년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언니는 이미 십몇년을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언니는 친절하지도 않았고 잘 웃어주지도 않았으며 시시콜콜한 농담 따위도 하지 않았다. 일만 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무서웠다. 그래서 쭈구리가 되어 응당 요청해야 할 것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처리를 하곤 했다. 같은 파티션에 있었지만 하루에도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은 날이 허다했다. (글에선 언니라고 썼지만 당시 사내에선 서로를 '직급+님'이라고 불렀다. 언니는 퇴사 후에도 꽤 오랫동안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후 여러 번의 조직 개편과 자리 이동이 있었고 언니와 나는 말 그대로 수많은 '회사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구내식당에서 언니와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고 산책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점심 멤버'가 되었다. 이후 내가 회사를 그만뒀고 그다음 해에 언니도 회사를 나왔다.



사실 언니가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아는 선영언니는 드물게 애사심이 상당히 투철한 사람이었다(언니는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한동안 '우리 회사'라고 불렀다.)



언니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며, 무서웠던 첫인상과는 달리 매우 겁이 많고 진중하며 책임감이 투철하고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회사 사람'에게 내 마음이 스르르 열렸던 것 같다.



언니가 순례길 얘기를 했을 때도 정말 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언니는 (아직도 믿기 어렵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비록 교회가 아닐지라도 순례길에 있는 성당이란 성당은 다 들러서 기도하고 회개를 했다고 한다.


주님의 존재를 반신반의해 온 것에 대한 죄의식

교회를 자주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한 죄의식

사람을 미워했던 것에 대한 자책


도무지 기도가 닿지 않는 것 같아 습관처럼 회개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 성당에서 순례자 강복(하느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 듣는 단어인데 아직도 그 의미가 잘 와 닿지는 않는다.)이 열렸고 그 날의 운세처럼 성경구절이 쓰여 있는 제비를 뽑았는데 아래와 같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6, 7절)


항상 주님이 함께하고 있었고 언니의 회개가 닿고 있었으며, 이제 회개는 그만하고 즐거이 집에 돌아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때 이방인이 되어 있으니까 무섭고 외로워서 심신이 약하니까 주님을 찾게 되었던 것 같아. 지금은 한국에 돌아오니까 평소처럼 똑같이 주님의 존재도 잊고 교회도 잘 안 나가는 건 매한가지. 또 무슨 일 터지고 외로우면 그때처럼 회개를 하겠지."


언니는 덤덤하게 말하며 맥주를 들이부었다.



순례길 후유증으로 양쪽 무릎엔 염증이 생겼고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서 들르는 마을마다 즐기지 못한 것들이 많으며

개인적인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순례길 내내 맥주를 많이 마셔서 살은 전혀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겁이 하도 많아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곳에 갔다 와보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고, 주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는 나에게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를 건넸다. 나는 그 조개를 보고 맥주를 마시다가 뜬금없이 울고 말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성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라는 도시까지 걷는 여정이다. 순교한 성 야고보의 시신이 해안에서 발견되었을 때 조개에 둘러싸인 상태였다고 한다. 조개껍데기들이 시신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개는 순례자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순례자들이 배낭에 조개를 매달고 걷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놈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불확실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믿음이라면 누구에게나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종교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는 그 힘의 뿌리를 더욱 견고히 다지는 것이 순례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중얼거리게 된다.



갑자기 궁금한 것,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언니를 울렸던 성경구절(왼쪽)과 나를 울렸던 조개(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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