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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Nov 21. 2019

관계의 미니멀리즘

물건뿐 아니라 대인관계에도 미니멀리즘을 생각한다. 기존의 관계를 대폭 줄이거나 새로운 연을 거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관계 속에서 혼란스럽고 피로함을 느끼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유를 살펴보니, 사람 한 명 한 명마다 타이틀을 부여하고 그 타이틀에 맞는 행동과 거리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타이틀에 맞춰 사람을 대함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약 13년 간 이 타이틀을 유지하면서 참 많이 붙어 다녔는데 그 친구의 결혼식을 계기로 우리 사이는 끝을 보게 되었다. 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로서 당연하게 원하고 기대했던 것들이,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나를 함부로 하고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이 되어 갈등이 있었다. 이후 친구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았는데 당시 갈등에 있어서 사후처리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나는 그 연을 계속해서 이어가지 못했다. 이어가지 못했다라기 보다는 비겁하게 회피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후 나는 잘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명한 사후수습이 얼마나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당시 문제가 생긴 관계는 끊으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연은 싸움 이후의 아주 먼 일이다. 그러니까 피 터지게 싸운 후에도 훈훈한 마무리가 되어 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고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소원해질 수가 있는 것이 사람의 연인데, 먼 미래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왜 지레 연을 끊는다고 정해버렸을까. 가장 중요한 핵심을 건드려볼 생각조차 안 하고 애먼 것에만 관심을 돌렸던 것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내 사람, 직장 동료, 한 번 보고 말 사이 등등 여러 타이틀을 부여해서 교류할 범위를 미리 정해버리고 그에 부응하는 행동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관계는 같은 의미가 있으며 같은 가치가 있고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항상 새긴다. 타이틀을 정해놓지 말고 관계들을 최대한 같은 눈높이에서 대하려고 노력을 해보고 있다. 이것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머릿속의 촘촘한 관계망이 미니멀하게 정리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정말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단, 가족관계나 어떤 고통이 따르는 관계는 논외다. 본인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선택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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