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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Nov 16. 2019

잘 가고 또 보자 (3/3)

사키와의 2박 3일 - 마지막 날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지금 한국 사회는 진짜 빨리 변하고 있어."


2박 3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이제야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지금의 변화 속도가 빠른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요즘에는 그 변화의 흐름에서 나의 위치 혹은 태도(stance를 대체할만한 한글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를 명확하게 가지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니, 어렵진 않은데 그것조차 계속해서 변하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가끔은 그냥 팔짱이나 끼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변화의 흐름을 구경한다.


생뚱맞게 이 이야기를 왜 쓰는지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었다. (사실은 저 말을 분명 많이 하긴 했는데 어떤 상황에서 말을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쓰다 말았다.)


사키는 아침부터 실면도를 받으러 나갔다. 수시로 예뻐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마지막 날 오전까지 스케줄을 알차게 다녔다. 덕분에 혼자서 월요일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 없이 산 지 거의 18년이 되어간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텔레비전이 있는 곳에 가면 넋을 놓고 본다. 광고까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맨질맨질한 얼굴을 하고 호두과자봉지를 들며 들어온 사키는 따뜻한 호두과자 하나를 내 입에 넣어주곤 바삐 짐을 꾸렸다. 금세 또 무엇을 한 아름 사 왔는지 캐리어는 터질 것 같이 빵빵했다. 18kg! 다년간의 여행짬으로 무장한 그는 자신 있게 캐리어의 예상 무게를 외쳤다.(이후 공항에서 저울에 재보니 18kg 정확하다고 했다.)


아침 겸 점심식사로 식당 닭 한 마리에 갔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혼자 일하시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집 반찬 같은 백김치와 깔끔하게 우러나온 닭국물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근 5일간 실천한 1일 1 떡볶이+1 맥주 때문에 속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차분히 속이 달래지는 것 같았다. 사키는 한국 와서 먹은 것 중 최고라고 했다. 마지막 식사가 그의 마음에 들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국물이 바글바글 끓자 주인 할머니께서 밀가루 반죽을 들고 오셔서 거친 손으로 반죽을 하나씩 떼어서 국물에 넣었다


 "수비제!"

(사키는 수제비라는 단어를 헷갈려해서 자꾸 수비제라고 부른다)


그렇게 수비제를 찾더니 드디어 먹게 되어 나까지 기뻤다. 할머니의 지극정성과 맛있는 음식에 감동한 그는 할머니께 선물로 호두과자를 드리고 싶어 했다.  사키의 부탁으로 내가 대신 할머니께 호두과자를 드렸다.


헤어지기 전에 커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나보다 돈을 덜 써서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었던 사키가 부득부득 커피값을 냈다. 평소 커피는 입에도 안 대며 카페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는 애써 우리의 시간을 위해 노력해주었다. 카페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괜히 이리저리 뜯어보며 이러쿵저러쿵, 나 내일 여기 갈 건데 이거 좀 봐봐 이러쿵저러쿵.


한 시간이 금방 지났고 우리는 헤어졌다.


2년 전에 울면서 만났고 울면서 헤어졌던 우리는,

이제 어제 본 것처럼 만나고 내일 볼 것처럼 헤어진다. 이런 만남이 너무 좋다.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고 사키도 많이 변했지만 이상하게 같이 있으면 한 집에 살고 있는 스물다섯스물셋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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