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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Aug 09. 2020

track 9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 태림

브런치 필명을 한 열댓 번은 고쳤나 보다. 평범한 보통사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지고 싶었는데 역시 나는 창의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C나 김보통 같은 신박한 이름을 왜 나는 떠올리지 못하는가. 내가 그렇지 뭐. 늘 남이 한 것을 보며 뒷북을 치지. 이런저런 이름들로 바꿔보았지만 탁 꽂히는 이름을 찾지 못했다.


이름을 지을  조건을 정하면  짓기 힘들다. 일본식 작명이 아니어야 . 뜻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야 . 의도한 뜻을 내포하고 있어야 . 유행에 따르지 말아야 . 단순해야 .  대체 어쩌란 말이야! 정말 세상에서 제일 쉽고도 어려운 일은 이름을 짓는 일인  같다.



밴드 이름 중에는 생각보다 그렇게 심오하고 예술적인 고민 없이 지어진 것들이 많다. 4 Non Blonds 단순하게  멤버가 모두 금발이 아니어서다. DNCE 누군가 DANCE에서 A 빼먹는 오타를 냈는데  상황이 재밌어서 밴드 이름이 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신인 눈뜨고 코베인은 너바나 커트코베인과 우리나라 속담을 합친 말장난에 불과하다. 마이 엔트 메리는 원래 옥이 이모라고 지으려고 했다가 그냥 영어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게  그리 중요하겠는가. 인간 자체가 멋지다 못해 괜히 이름까지도 멋진  같은 사람이 주위에 한두 명은  있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보기 싫은 사람은   글자도 듣기 싫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명이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이름에 대한 느낌을 좌우하게 되는  같다.




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으니 거의 30년 전의 일일 것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우리 가족은 2:2로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했다. 지는 팀이 동네 가게에 가서 빵을 사 오기로 했다. 윷놀이를 하다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우리 중 유일하게 김 씨가 아닌 당신이 빵을 사 오라고 큰소리를 냈다. 어린 나는 맞장구를 쳤다. 엄마는 빵을 사러 나섰고 엄마와 같은 팀이었던 나도 따라나섰다.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험한 길을 걷는데 고요한 와중에 사르륵사르륵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도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때 빵을 사러 가던 그 길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아버지는 우리가 사 온 빵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성씨 핍박은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는 김 씨도 아니면서'라는 말을 꽤 자주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김 씨임을 거부하기로 한 것은 아마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였을 것이다. 끊임없는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와 그런 사람과 한 평생 살면서 가족이라는 허울에 집착하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더 이상 김 씨 집안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성씨를 가진 사람도 아닌, 그냥 내가 되기로 했다. 계속해서 생채기만 내는 관계는 애써 지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의 법적 성씨 변경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성씨 변경으로 인한 복리 차원에서의 사유가 너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의 성씨 변경 의지는 딱 거기까지였다. 본가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성씨 변경 방법을 입력하며 암울해하는 정도.




김 씨 집안 자녀들의 이름은 모두 태(泰) 자 돌림이다. 나는 태림이란 이름 자체에는 딱히 불만은 없다. 일단 성(性)의 구분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다. 또 촌스럽지도, 흔하지도, 유행에 따르지 않아서 좋다. 돌림자에 끼워 맞췄겠지만 큰 수풀(泰林)이라고 해석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학창 시절 이상하게 해석하는 음란마귀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태림. 어감도 마음에 든다. 태륌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차라리 탤림이라고 불리는 게 나은 것 같아서 TaeRim 말고 TaeLim이라고 영문표기를 했더니, 누가 'tell him'이라고 할 때마다 자동으로 대답하게 되지만 말이다. 타인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이 내 마음에 들다니 이것 또한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브런치 작가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꿔도 자꾸 태림으로 돌아온다. 성은 김 씨를 쓰려니 오장육부가 거부를 하고, 다른 성을 쓰자니 어색하다 못해 손발이 불판 위 마른오징어처럼 오그라든다. 이런 나의 필명 짓기 쌩쑈가 바로 내 삶의 집약체인 것 같다. 방황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지만 결국 문제의 본질은 '나'고, 해결 주체도 '나'다.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지만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다는 이소라의 어느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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