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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May 11. 2019

모헤어 절벽 감전 사건

2017년 8월 10일


아일랜드(Ireland)의 서쪽 끝 모헤어 절벽(Cliff of Moher)에 도착했다. 한여름이지만 바닷바람이 차서 겉옷을 꺼내 입었다.


절벽에 잘 가꿔진 산책로를 걸었다.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광대한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절벽의 반대편으로는 푸르른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안에는 양 몇 마리가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은 평화 그 자체였다. 바다를 등지고 초원을 바라보며 잠시 무언가에 몸을 기댔다.


확! 하며 어떤 불꽃이 내 몸을 확 휘감는 공포에 휩싸였다. 찰나였지만 분명하게 그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내가 기대었던 것은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었다. 특히 오른쪽 팔꿈치를 힘주어 기대었나 보다. 그 부분이 아려왔다. 플리스 소매를 걷어보니 속살에 발갛게 일자로 선이 나 있었다.


- 괜찮아? 야, 너 그래도 모헤어 절벽에서 기념품(화상) 가져간다? 하하하하.


어떤 남자가 놀림인지 위로인지 모를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을 건넸다.


얼얼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폐회로의 두 포인트에서 전위차가 발생하면 이온이 이동하여 전류가 흐른다. 이때 발생하는 누설전류를 흡수하는 것이 접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기기기는 접지 처리가 되어 있다. 또한 각종 제조라인에서 사용되는 모든 설비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접지 처리가 필수적, 의무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접지는 보통 earth, ground라고 불린다. 낙뢰가 발생하면 피뢰침이 땅 속에 매립된 접지선으로 전류를 내보낸다. 그래서 보통 접지=땅이라고 여긴다.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선을 통해 이온이 내 몸으로 이동하여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땅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에 내 발이 땅에 닿은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 날이 나의 마지막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곳은 평화로웠으므로 동물을 죽일 만큼 강한 전류를 내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의 전류가 흐른 건 아니었을까.

아니다, 겉보기완 다르게 초원의 주인은 아주 악랄하여 그곳을 탈출하는 양은 가차 없이 사살하리라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은 정말 평화로웠다. 어느 누구 하나 해를 가하는 이가 없었으며 붐비지도 않아 안전사고와는 거리가 아주 먼 그런 곳이었다. 모두들 고요한 자연을 만끽하며 사색에 젖어 있거나 천천히 산책을 했다. 나 혼자 기대었다가 감전이 됐다.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구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바닥에 주저앉은 게 머쓱해서 주섬주섬 일어나 다시 걸었다.


화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며칠 후에 없어졌다. 겉옷을 입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팔찌들은 어떻게 묶였을까. 이건 전선이 아닌가?
공포의 전선. 주의 문구라도 써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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