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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May 14. 2019

커피

2006년 7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그 어르신이 커피 스몰 사이즈를 주문하셨다. 커피를 내 드리고 다른 볼일을 봤다.


- 야! 너도 참 센스 없게.. 손님 커피 가지고 가시는 것 좀 봐봐!  


동료가 내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

어르신께선 떨리는 손에 들린 무거운 커피 잔을 힘겹게 옮기고 계셨다. 손이 하도 떨리니 커피가 찰랑이다 못해 어르신의 손에 흘러내렸다. 그 뜨거운 커피가.


단골손님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커피를 내 드린 후 그를 살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스몰 사이즈를 주문하시고 이렇게 위태롭게 돌아서셨구나.


- 으이구. 큰 컵에 담아 드려야지. 그래야 커피가 안 넘칠 거 아냐.


별생각 없어 보였던 동료가 빛이 났다. 쟤 언제 저렇게 깊은 생각을 했대.


늘 같은 새벽 시간에 오셔서 가래가 잔뜩 낀, 걸걸하다 못해 숨 쉬는 게 조금은 고통스러워 보이는 목소리였지만 온화한 표정과 어조로 커피 스몰 사이즈를 주문하셨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의 뒷모습을 살펴봤다.


잔에 든 커피가 넘칠 정도로 떨리는 손과 구부정한 어깨, 세월아 네월아 걷는 걸음. 힘겹게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호로록 커피를 드셨다.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그는 커피를 마시러 왔고 배운 대로 큰 잔에 스몰 용량의 커피를 담아 드렸다.

그는 다행히 커피를 쏟지 않고 테이블에 잘 안착했다.


그가 불쾌(불편)해할까 봐 커피를 테이블로 갖다 드리진 않았다.




2019년 5월 아침,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로 가는데 찰랑이는 잔 속에서 13년 전 그 어르신의 뒷모습과 스물 세 살의 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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