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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Jun 09. 2019

뻔한 말을 와 닿게 하는 사람

2017년 5월 말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아침부터 날이 잔뜩 흐렸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날은 곧 화창하게 갰고 그 틈을 타 잠시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라고 해봤자 물에 발을 담그는 게 전부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이 모습을 재밌어했고 나를 본인들의 카메라에 담아 갔다.


그러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급하게 짐을 꾸리고 다시 길을 향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깜빡하고 판초우의를 챙기지 않았다. '괜찮겠지' 하고 비를 쌩으로 맞으며 걸었는데 같이 걷는 분께서 그러다 큰일 난다고 극구 말리셨다. 그때 마침 짠 듯이 그 산동네에서 구멍가게를 발견했고 정말로 짠 듯이 판초우의를 그것도 아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판초우의를 입고 스틱을 짚으며 걸으니 내가 정말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판초 우의를 입은 채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숲이 우거진 산을 넘었다. 무슨 산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앞 순례자가 가는 대로 따라갔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앞, 뒤에는 (국적은 모를)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순례자들이 있었고 서로 앞사람의 판초우의 색깔을 방향지시등 삼아 쫓아갔다. 신발은 이미 다 젖어서 맨 발로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주비리(Zubiri)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생고생을 한 것 치고는 샤워한 번 하고 나오니 몸이 말짱했다.

숙소 근처의 신발 가게에서 (방수 기능이 있다는) 새 신발을 사고 안 그래도 얼른 버리고 싶었던 원래 신발을 버렸다.


숙소 부엌에 가니 동양인 여성, 남성분께서 앉아 계셨다. 딱 봐도 60대 후반 정도의 어르신이었다. 서툰 영어로 그들이 먹고 있는 저녁을 나에게 권했는데 일본인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은 부부고 순례길을 함께 걷고 있으며 히로코라고 하는 그 여성은 아주 박학다식해 보였고 남편은 장난기가 철철 넘쳐흐르는 재미있는 분이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히로코가 어떤 말을 했는데 목이 탁 메었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분명히 기억나는 건 별다른 말도 아니었고 누구든 할 수 있는 뻔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그들 앞에서 엉엉 울었는데 남편 분은 여전히 짓궂은 얼굴로 웃으며 저녁을 드시고 있었고 히로코는 맘 편하게 울라며 다독여 주셨다. 그들은 내가 우는데 하나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정말로 연륜의 만렙이 느껴졌다.


며칠 후 다른 마을, 어느 일본인이 지금 어느 건물에서 '태림상'을 찾고 있다고 어느 한국인이 말씀해 주셨다. 그곳으로 가보았다. 히로코가 있었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며 껴안았다.


순례자들은 모두 같은 길을 간다. 그래서 비슷한 날에 출발한 순례자들은 대부분 어디서든 만나게 되어 있다. 주비리에서 처음 만난 날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이렇게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약 2주 후 히로코는 남편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애초부터 완주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을 가슴에 팍 와 닿게 건네줬던 그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어떤 곳 보다도 주비리가, 처음 본 사람 앞에서 펑펑 울었던 주비리의 작은 부엌이 아직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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