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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Oct 09. 2019

페스티벌

2007년 5월 5-6일


미국 뉴저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Bamboozle에 갔다. 뮤즈와 린킨파크를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여행 루트는 평소 보고 싶었던 뮤지션이 나오는 페스티벌을 기준으로 짜였는데, 그 며칠 전 Coachella에서 뷔욕(björk)을 봤고 바로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게 되었다. (뉴욕에서 뉴저지에 있는 Bamboozle까지 당일 왕복 셔틀버스를 운행했기 때문에 뉴욕에 머물며 양일의 페스티벌을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뷔욕도 봤다고는 할 수 없다. 코첼라에서 몸이 너무 아파서 잔디에 누워 헤롱헤롱 하며 눈만 껌뻑껌뻑하며 스크린만 겨우 쳐다봤기 때문이다. 아무튼 뉴욕에 도착을 했다.


당시 헤드라이너.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왜 기억에 없는지 모르겠다. 안 봤을 리가 없는데... 정말로 하나도 기억이 없다. 좋아는 하는데... 이상하다.

Meadowlands라고 하는 공연장은 잔디도 아니고 그냥 주차장 같은 아스팔트 바닥에 무대만 설치해 놓은 곳이었다. 관객 대부분은 한창 놀기 좋아하는 10대 아이들이었고 질서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 데나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담배를 뻑뻑 펴대고 침을 뱉었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발에 치어 뒹굴었다. 대체 왜 배치했는지 모를 공연 스태프들은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첫날 뮤즈의 무대는 좀 신기했다. 연예인을 실제로 본 느낌이랄까. 굉장히 거대 밴드라고 생각했는데 메인스테이지도 아닌 서브 스테이지에 올라서 거의 최소한의 무대 연출(조명, 스크린 등)로 무대를 이어나가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히트곡 Starlight에 박수만 쳐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것이 이루어지긴 했다. 이후 뮤즈는 내한공연을 꽤 자주 왔고 우리나라에서만 세 번을 더 볼 수 있었다.


둘째 날 린킨파크는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라이브로 들으니 감격스러웠다. 특히 체스터가 자기 아들 타일러를 무대로 세워서 In the end를 같이 불렀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맨 뒤에 있었기 때문에 무대는 거의 볼 수 없었고 스크린과 관객들 노는 것만 볼 수 있었는데 국민밴드의 무대 같은 느낌이었다. In the End는 워낙 히트곡이라 한국인인 나까지 따라 부를 정도였으니 미국인들은 오죽했을까. 당시 무대 이후로 린킨파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딱 10년 후인 2017년에 체스터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린킨파크는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팀이 되었다.


사실 당시 꿈같은 팀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봤지만 그것이 끝. 생각보다 무지하게 재미가 없었다. 이것이 내가 페스티벌을 웬만하면 혼자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뮤즈가, 린킨파크가 공연을 하는데.. 그냥 작은 클럽에서 친구들과 인디밴드 공연 보며 부대끼고 노는 게 훨씬 더 재밌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아주 많이 그리웠다. 얼마 전 밴드 피아의 마지막 페스티벌을 보며 그동안 즐겨왔던 수많은 페스티벌과 그들의 무대가 스쳐 지나갔다.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 페스티벌의 형태도, 내용도, 관객도, 분위기도 아주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피아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고 다 함께 마지막 페스티벌 무대를 즐겼고 또한 슬퍼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이 부대끼며 놀며 즐기고 슬퍼하는 친구와 돗자리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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