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엘 Nov 07. 2019

어제 본 것 같은 사키 (1/3)

사키와의 2박 3일 - 첫날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빼곡한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경 사키가 머무는 서울 을지로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사키코 오가타.

13년 전 캐나다에서 한 집에 살았던 하우스메이트고 일본인이다. 줄여서 사키라고 부른다. 당시 일 년 정도 같이 살다가 각자 나라에 돌아간 이후 소식이 끊겼는데, 지금부터 2년 전인 2017년, 서울에서 눈물의 상봉을 한 이후, 1년에 두 번 정도는 한국에서 사키를 만나고 있다.


사키는 올해 1월에도 서울에 놀러 왔었는데, 그때 트윈룸이나 1인실이나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며 트윈룸을 잡을 테니 나도 같이 와서 놀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함께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그는 이번에도 트윈룸을 잡을 테니 또 오라고 했다. 그래서 사키의 숙소에 또 가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궁금한 게 많았다. 올여름 함께 캐나다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가 내가 고사하는 바람에 사키는 혼자 여행을 다녀왔던 터라 일단 그 여행기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 한일 정세가 악화됐는데 사키를 대면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도 궁금했다. 종종 국제 정세에 대해 모바일 메신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보면 느낌이 다를 것 같았다. 여전히 워너원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했고 요새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했다.


"야, 우리 어제 본 거 같다?"


사키를 보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그 역시 그렇다며 나를 침대로 안내했다. 내 침대 위에는 역시 예상대로 그가 가져온 선물이 예쁘게 놓아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사키는 만날 때마다 선물을 가득 준비해 온다. 그래서 만나기 전에 나는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하는데 선물을 주고 나면 매번 '아.. 잘못 골랐다..' 하고 나를 책망하게 된다. 선물을 고르는 것은 정말 너무 어렵다. 지난번엔 사키가 좋아하는 워너원 황민현의 굿즈를 선물했는데 알고 보니 사키는 그런 굿즈는 모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향초를 준비했는데.. 그것은 쇼핑으로 싹쓸이를 할 목적으로 온 그에게 캐리어에 담기엔 너무 무거워 보였다. 이번에도 선물을 주고 나니 머쓱해지고 말았다.

 

다양한 간식거리와 캐나다 여행에서 사 온 추억의 기념품이 예쁘게 펼쳐져 있는 침대를 보니 참 사키답다 싶었다.


사키는 아주 야행성이라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놀 수 있었다. 최근에 다녀온 캐나다 여행 얘기부터 어제 어떻게 입국했고 오늘은 무엇을 했으며 내일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사고 싶은지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너무 졸리고 피곤했다. 사실 이날은 나야말로 너무 바쁜 날이었다. 오전부터 미국의 사회와 문화라는 과목의 출석수업 시험을 치렀고, 오후에는 여러 밴드가 릴레이로 나오는 공연을 다섯 시간 동안 보고 왔다. 여행은 사키가 하는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키도 타카코(또 다른 일본인 친구)도 진즉에 알았겠지만 난 이들이 한국에 와도 딱히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만나는 것에 크게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팔팔하게 날뛰는 사키를 뒤로 하고 일단 나는 기절했다.

작가의 이전글 그때와 지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