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토로하다 제 4장
00이 가라앉으니 꼭 흔들어드세요.
블로그 글이 요새 뜸했다. 바쁘다거나 정신이 없다는 탓이 아니라, 그냥 글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본 것도, 경험한 것도 많지 않았던 최근이라, 시야가 좁아질 대로 좁아졌구나 싶었다.
글을 쓸 때만은 때 묻지 않은 생각을 오로지 나만이 곱씹을 수 있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억지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무언가 갑자기 떠오르는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그럴 때는 어떤 사물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는 경우
같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손이 너무 시려 편의점에서 율무차 하나를 샀다.
'안의 내용물이 침전될 수 있으니 꼭 저어서 드세요'
뜨거운 물을 붓고 빨대로 가루가 걸리는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휘저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조금씩 마시며 추운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너무 뜨거웠다.
조금 식으면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율무차를 노트북 옆에 두었고, 시간이 지나 마셨을 때는 차갑게 식어버린 상태였다.
율무차는 식어버렸고, 열심히 저어주었던 가루는 금세 가라앉아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을 수 있던 빨대도 버려버린 탓에 마시기에는 어려웠다.
율무차는 추운 몸도 녹여주지 못했고, 맛도 없어졌다.
'나중에 마셔야지'라는 생각이 내용물을 가라앉게 만들었고 구입할 때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가라앉았다.
식어버린 율무차에서 내가 마신 건 가루가 아주 조금 녹아있는 맹맹한 물이었다.
가루가 가라앉고 색이 빠져버렸다.
딱히 뚜렷한 색이 없다.
생각을 멈추지 말자. 나중이라는 안일함은 꽤 무거워서 자꾸만 가라앉게 만들고 결국 남는 건 뜬구름뿐이다. 그 뜬구름은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본래의 흔적이 조금 남아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식어버리고 애매해진 위만을 바라보면 밑에 가라앉아있는 중추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계속 저어줘야 하는 건,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흐릿한 농도는 맛이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