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차
2016. 11. 5.
어제부터 목이 칼칼하더니만 감기에 걸렸다. 코를 힝 풀었는데 휴지가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물든다. 꽤 오랜만에 끔찍한 감기에 걸린 듯하다. 스탭누나랑 훌쩍이면서 뜨거운 육개장을 먹으러 갔다. 육개장을 식당에서 먹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빨간 국물에 밥 한공기를 뒤집어 넣고 몇 번 뒤섞어 먹으니 속은 든든해지고 콧속도 시원해진다. 내 코랑은 다르게 깨끗한 하늘을 부러운 듯 올려다보다가 어깨가 움츠러들정도로 달콤한 연유커피도 한 잔 마셨다.
얼마 전에 제주경향하우징페어에서 게스트 하우스 이름으로 초대권이 왔다. 코엑스랑 킨텍스에서 하는 하우징페어는 돈내고 들어가던데 제주는 무려 공짜다. 중문에 있는 컨벤션센터 앞까지 가는 110번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냥 아무 버스나 일단 탔다. 한 시간을 조금 넘어서 컨벤션센터에 도착했다. 뷔페식기가 깔려있길래 아이참 육개장 한 그릇 비우고 왔는데 밥도 주는 건가 기대했는데 하우징페어랑 관련없는 다른 행사였다.
주거와 관련된 여러가지 신기하고 재밌는 물건을 소개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독일에서 생산되었지만 국내제품과 가격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아이템을 보러 오는 곳이었다. 집 지으려는 사람이면 모를까 나는 좋은 기와를 올릴 지붕도 없고 강력한 수압이 필요한 싱크대도 없어서인지 큰 재미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좀 재미없는 표정으로 둘러보는 건데 부스마다 소개해주시는 분들은 내가 무슨 집짓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 아빠로 보이셨는지 격하게 환영해주셨다. 몇몇 부스에서는 돈다발을 주면 전원주택을 뚝딱 만들어준다고 하며 그간 지었던 건물들의 조리예(?)와 평면도를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집구조가 다르면 현관문을 열면서 그려지는 집안의 모습부터 달라지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아파트 모델하우스 책자의 평면도를 보면서 아파트 살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했던 게 기억난다.
버스에서 침 흘리며 게하에 돌아와서 스탭형이 양배추와 숙주를 사다 만들어준 야끼우동을 먹는다. 내가 마요네즈를 좀 많이 짰는지 살짝 시큼하긴 했지만 충분히 일본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