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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가만히 있기 놀이

48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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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7.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도록 나가지 않는 게스트를 기다리면서 청소를 한다. 창밖의 오늘은 하늘은 맑은데 무진장 세게 부는 바람에 나무는 휘청이는 날이다. 이불을 평소보다 치밀하게 덮고 30분 낮잠을 잔다. 이제 밥시간만큼이나 낮잠시간이 중요해진 것 같다. 운동은 빼먹어도 낮잠은 매일매일 꾸준하게 해내고 있다.


오늘 저녁식사에 사장님네 네 식구가 함께했다. 감기가 나을듯 말듯하더니 아까부턴 머리가 콕콕 쑤시길래 맥주 한 잔을 마시다 그만뒀다. 술을 안 마시니까 계속 식탁에 앉아있기도 뭐했는데 때마침 미취학 아동이 날 불러낸다. 자기 태블릿을 자랑하더니만 내 무릎에 앉아 게임을 시작한다. 한 판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날 등받이의자로만 사용하는 게 분해서 무겁다는 핑계를 대면서 화장실로 도망간다. 꼭 지 혼자 어려운 판을 못 깰 땐 나한테 내민다.


유튜브에서 만화 마법사의 아들 코리를 보더니만 빗자루로 빙의한 막대기를 들고 덤빈다. 뒤에서 들쳐업고 발바닥을 플라스틱 포크로 찔러 무찔렀다. 왜 나는 어른이고 자신은 어린이인데 봐주지 않느냐고 해서 솔직하게 어른도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엔 부루마블을 한다. 미취학아동을 파산시키기위해 닥치는대로 도시를 사들이고 호텔을 지었지만 미취학아동이 구매한 몇 안되는 도시 중 그것도 '서울'에 걸렸다. 안그래도 이제 노는 것도 피곤하고 200만원을 낼 돈이 없어 파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선심쓰듯 십만원으로 깎아준다. 그뒤로 20분, 나는 또 서울에 걸려서 파산했다.


지난 번에 내가 전해준 '가만히 있기 놀이'를 하기로 한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지는 놀이인데 그냥 내가 그만 놀고 싶을 때 하려고 알려준 놀이다.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혼자 낄낄대면서 포기를 하길래 나는 마음을 다해 격려해주었고 15분간 놀이를 더 이어가다가 (나는 자다가) 미취학아동을 귀가시켰다. 간만에 젊게 노니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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