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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킷이지 Feb 19. 2017

[탐라유배일지] 야끼소바

52일차


2016. 11. 11.


7시에 간신히 눈을 떠 일출 사진을 찍는다. 바다에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일출시간보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 하루를 시작해야하는데 침대에 다시 쓰러졌다. 열두시를 넘겨 일어날 줄은 모르고.


얼굴에 대충 물기를 묻히고 결국 다 읽지 못한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왔다. 하루에 30그릇만 판다는 식당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2명만 있었는데 내가 앉자마자 7명이 들어온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3주 전에 반쯤 적었던 엽서의 빈곳을 마저 채웠다. 생각해보니 유배와서 펜을 잡을 일이 전혀 없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돼지고기가지볶음이 메인인 정식이 나왔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고... 간고기였다. 가지에 잘도 붙어있는 돼지고기가 아까워 안먹던 가지를 열심히 집어먹었다. 


우체국에 들러 390원에 엽서를 보내고 책방에 왔다. ㅁㅇ누나가 알려준 곳인데 오 듣던대로 조용하고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출판물들이 많다. 동백사진 엽서를 한 손에 쥐고 엽서 하나를 더 고르려고 하는데 사람 하나 없던 이곳에 하나둘 사람이 들어오더니 다섯 명이 책방을 채웠다. 엽서는 다 고른 것 같아서 11월 어라운드를 하나 들고 나온다. 생각해보니까 작년 11월에도 어라운드를 샀고 아직 내 방 침대맡에 있다... 평소에는 달리던 길을 오늘은 걸어서 돌아간다. 나중에 생각날 것 같아서 뛰어다닌 골목골목을 사진으로 찍어둔다.


나의 숙원메뉴 야끼소바를 만들기 시작한다. 돈까스 소스가 없어서 굴소스와 간장을 대강 때려넣었다. 간장 두 수저를 더 넣으니까 색이 어느정도 나는 것 같다. 양배추와 숙주를 볶다가 메밀면까지 쏟아부었더니 겁이 날 정도로 양이 급격히 늘어난다. 옆에서 오꼬노미야끼를 만들고 있는 ㅇㅇ님 눈치를 슬쩍 보고있는데 미취학아동이 들이닥쳤다. 솔직히 맛은 애매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먹길래 많이 많이 덜어줬다. 먹고난 뒤엔 어김없이 놀이시간이 찾아왔고 늑대인간 놀이를 하다가 또 일기를 못 썼다.


근혜찡의 남은 5%라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50대 아재 게스트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술을 마시다가 12시가 넘어버렸다. 게스트들이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고나서 ㅇㄷ형 ㅁㅇ누나 ㅇㅇ님이 깜짝 생파를 해줬다. 유배지에서 생일케잌을 자르는 마음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들뜨기도 해서 잘 느껴지지도 않는 쇄골을 긁고 계속 턱을 만지작대게 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면서 뜬 눈으로 누워있는데 정작 고맙다는 얘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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