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차
2016. 11. 13.
어제 남은 떡볶이를 하나 입에 넣고 뜨거운 누룽지탕 한 숟갈과 함께 씹는다. 누울 때까지만 해도 더워서 한 쪽 다리를 이불 밖으로 꺼내놨는데 일어날 때가 되니까 코끝에 겨울이 왔다. 꾸물꾸물한 하늘이 점점 개면서 바다 위에 하얀 줄이 생긴다. 어제 떡볶이를 해주신 아저씨 게스트가 말씀하시길 저게 조류란다. 조류를 타고 이동하는 생선 떼가 보일까 싶어 포구 가까이에서 옥빛 물 속을 들여다봤다. 암것도 읎네.
조만간 또 놀러가기로 약속하고 게하를 나왔다. 일주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는데 그 속도가 어제만큼 폭발적이진 않다. 창 밖으로 일렬로 서 있는 여중생들이 보이더니만 마라톤 아저씨들이 타다다다닥 뛰어간다. 어제 모슬포 가는 버스에서 가로등 옆에 달려 있는 감귤마라톤 깃발을 본 게 기억난다. 자치경찰차가 우글우글대는 걸 보니 타이밍이 아주 망한 것 같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게하를 찾은 ㅎㅅㅇ형이랑 점심을 먹었다. 분명히 8천원짜리 흑돼지 두루치기를 주문했는데 한치가 섞여나오길래 돈이 더 나올까봐 급하게 사장님을 찾았다. 몇 개 흘려준 거라고 그냥 먹으란다. 신난다. 우산을 들고 밤산책을 하다가 사장님 댁에서 오븐으로 기름을 쫙 뺀 수육을 먹었다. 비행기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게스트 하우스로 가는 거라 다들 더 섭섭해하신다. 그래도 명색이 유배지인데 날이 갈수록 생활이 편해지고 재밌어지는 건 문제다.
2시가 될 때까지 소주와 맥주와 아쉬움을 번갈아가며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금고아를 끼운 것처럼 지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