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차
2016. 11. 14.
하늘이 파아아랗다. 정말 파아아아아아랗다. ㅇㅇ님과 이런 날엔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합의를 봤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데려가주실 운전능력자의 의향이다. 어제의 음주로 국물이 필요했던 ㅁㅇ누나도 외출에 동의했고 처음 목적지로 정한 표선의 쌀국수집이 망해버린 탓에 가시식당에서 두루치기와 몸국을 먹기로 한다.
식당 안에서 물을 따라 마시다가 밖을 보니 우리가 타고 온 레이 뒤로 금세 차 두 대가 연이어 주차를 한다. 복작복작해진 분위기의 식당 안에서 팬위의 고기를 이리저리 펼쳐 익힌다. 고기가 핏빛을 잃으면 무채와 파채, 콩나물을 올려 숨을 죽이고, 집게로 휘적휘적대면서 침착하게 기다린다. 눌러붙는 고기를 발견한 순간 집중력을 잃어 집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팬에 깔린 은박지가 찢어졌다. 빌어드실.
껌맛나는 블루베리 빵또아를 입에 물고 일일 가이드 겸 기사님의 안내에 따라 아부오름으로 향한다. 가이드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 5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발가락을 꼿꼿하게 세워 분화구 속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들여다보다가 바닥에 전쟁터 지뢰마냥 널려있는 똥을 밟을 뻔 했다. 분화구를 둘러싼 길을 한 바퀴 돌 수도 있는데 길 중간에서는 무슨 촬영을 하는지 드론을 날리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저러다 분화구에 떨어지면 어쩌나 마음 속으로 걱정해주다가 또 똥을 밟을 뻔 했다. 빌어드실.
마지막 코스 표선 해비치 해변에 왔다. 물 가까이 가서 바닥에 비친 하늘을 찍으면 더 이쁠 것 같아서 모래 위에 살짝 깔린 물을 용감하게 참방참방 밟으면서 걸어간다. 그러나 슈퍼문의 영향력인지 셔터 몇 번 누르는 사이에 발밑으로 물이 급속도로 차오른다. 왼쪽 신발과 양말을 동시에 벗겨내는 순간에 이미 오른쪽 발은 통째로 물에 잠겼다. 젖은 신발을 손에 쥐고 맨발로 차까지 걸어가다 왼쪽 발바닥에 가시도 찔렸다. 빌어드실.
차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자와 치킨을 사다 먹었다. 결국 오늘 저녁까지 이렇게 함께 먹고 나서야 이삿짐을 챙긴다. 그래도 마음이 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사장님 댁으로 인사를 하러 갔는데 미취학아동이 내게 이야기 한다. "삼촌, 마지막으로 저 한 번 안아주세요." 번쩍 들어 안아줬다가 내려놓는데 '마지막으로'라는 말 때문에 기분이 요상하다. ㅇㄷ형 차를 타고 새 둥지로 간다. 안 그래도 피곤할텐데 왕복 2시간 운전을 하게 하는 게 미안해서 차 안에서 볼빨간 사춘기 노래로만 재생목록을 채웠다.
오늘도 먹을 거 다 먹어놓고, 양심도 없는 이 몸뚱이는 감자로 만든 떠먹는 피자에 소주를 삼킨다. 과연 이곳에선 살이 빠질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