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일차
2016. 11. 15.
북쪽 탐라는 역시 으스스하다. 비행기 창문에 찰싹 붙어 드문드문 보이는 탐라의 건물들을 내려다본다. 자다깼더니 창 밖에 건물들이 빽빽해졌다. 서울에 왔다. 지하철 창문에 몸을 비춰본다. 반팔 위에 후드를 하나 걸친 나와 다르게 빵빵한 패딩과 두툼한 코트를 뒤집어 쓰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낯설다.
별로 든 것도 없는 캐리어를 끌고 집에서 오자마자 벌러덩 쓰러졌다. 엄마 생파도 하고 겨울 옷도 가지러 왔는데 어젯 밤에 캐리어를 비우면서 생각해보니 딱히 캐리어에 채워 올 겨울 옷이 없을 것 같아 패딩이나 하나 입고 가야겠다 생각한다. 간만에 MLB 복귀를 했으나 여전히 선발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우 분노하며 게임기를 껐다. 빈 집이라 집에 온 기분이 들지 않는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자마자 큰 몽뚱이를 날렵하게 숨겼다. 비밀로 해달라고 아빠한테 당부했으나 바나나를 손에 들고 오신 걸 보니엄마는 이미 내가 집에 올 걸 알았나보다. 고기를 구워 저녁먹고 빈둥대고 있는데 아 시간이 너무 빨리간다. 내 신세가 휴가 나온 군인 같기도 하고 여행 온 백수같기도 해서 반가운 내 침대에 누워도 잠이 잘 안 온다. 늦게 퇴근한 ㅊㄴㅊㄴ 얼굴까지 보고 잠이 들었다.
아 이래서 집에 오는 게 싫었는데... 집이 너무 좋아서 유배지로 돌아가기 싫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