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일차
2016. 11. 16.
10시까지 방바닥을 굴러다니다 치과에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일주일 전부터 아랫니 하나가 하얗게 물들었는데 지식인에 물어보니 치석이란다. 스케일링을 언제 받은지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1년은 된 것 같아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치과에 간다. 입속 구석구석 기계의 강한 울림이 전해진다. 진동이 강력해서인지, 턱이 고장나서인지 머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다. 삐이- 하는 이명도 들린다. 치석은 사라졌지만 잇몸이 많이 부어있다고 조만간 다시 오라고 하신다. 유배 중이라 그럴 수 없다고 하고 치과를 나왔다.
어젯밤 ㅊㄴㅊㄴ가 사온 케잌으로 커팅식을 한다. 짝짝짝. 나는 선물로 '나'를 준비했고 선물을 본 엄마는 많이 실망하셨다. 내년에는 인터넷 보고 미역국이라도 끓여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어야겠다. 점심으로 먹은 월남쌈 속 아삭한 채소들이 얼얼하게 한 어금니를 감싸쥐고 김밥재료를 사러 이마트에 왔다. 딱히 김밥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김밥을 싸는 날의 집안 분위기를 좋아하는지라 가끔씩 김밥을 싸달라고 이야기한다. 나를 보고 참 손 많이 가는 선물이라고 하셔서 원래 선물은 받은 사람이 케어하는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영화 보면서 김밥을 만다. 엄마는 영화에 나오는 유해진님이 김밥을 대신 썰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가 부르니 둘 다 눈에 졸음이 온다. 화투판을 깔고 맞고를 시작한다. 첫 판엔 기세 좋게 3800원을 땄었는데 결국 야금야금 돈을 잃더니 결국 파산했다. 하늘을 찍으러 동네 뒷길로 올라간다. 가로수가 대부분 야자수인 유배지의 광경과 다르게 길가에 노란 은행나무가 서있는 육지의 모습을 기대하며 왔는데 떨어진 은행잎도 많이 없다. 어제는 오랜만에 온 우리집이 설레서 잠이 안 왔는데 오늘은 벌써 내일 가야한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온다. 집 떠나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