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차
2016. 11. 19.
차귀도에 오기로 해서 만나기로 했던 ㅇㅇ님이 ㅁㅇ누나랑 차를 끌고 온단다. 게스트 형이 드라이브 할 겸 터미널로 태워준다고해서 얼른 차를 얻어탔다. 아이오닉 전기차였는데 핸드폰으로 네비만 켜고 시동을 안 거시길래 안전띠도 안매고 그냥 멍하니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움직여서 놀랐다. 저기 도시의 상징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보인다.
형한테 커피까지 얻어 마시고 맥도날드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서 또 아이오닉이 와서 내 앞에 선다. 뒷좌석에 앉자마다 김밥에 만두가 셋팅됐고 목적지는 새별오름이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별오름 앞에 있는 푸드트럭 와이키키제주에 간다고 한다. 집에서 나올 때만해도 구름색이 그리 맑지는 않았는데 서귀포에 다다라서는 해가 구름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다. 전기차라서 엔진소리가 조용하니까 차밖에 풍경은 더 조용해지고 차안의 음악은 더 생생해진다.
햇빛을 뚫고 새별오름에 왔는데 여긴 안개뿐이다. 그래도 저 언덕 위에 올라가면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여러 사람들 사이엔 나도 있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안개 너머로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엄빠의 손길을 만류하고 빠르게 언덕을 뛰어 올라가던 어린 소년은 내 앞에서 속을 게워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새별오름을 내려온다. 9천 9백원짜리 스테이크를 먹고 테쉬폰 옆 우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왔다. 여기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로 만든 거라던데 목장 주위를 둘러싼 짐승의 똥냄새를 잊게할만큼 깔끔한 맛이었다. 오늘 투어의 세 번째 코스인 카멜리아힐에 도착했을 땐 선크림을 안 바른 안면이 걱정될만큼 쨍쨍한 날씨였다.
지난 번에 표선에 갈 때만 해도 동백꽃이 피었다는 소식은 없었던 것 같은데 빨간색, 하얀색, 핑크색 동백이 꽤나 빽빽하게 달려있다. 다음 달쯤엔 다 커버릴 앙증맞은 애기동백도 많았다. 원래 동백의 향이 다른 꽃보다 강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온실을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이런 게 향기로구나 싶을 정도로 꽃 향기가 어마어마했다. 산책로에는 인스타스러운 가랜드가 심심하면 하나씩 등장하곤 했는데 몇몇 짝수들은 삼각대가 보는 앞에서 공격적인 입술박치기를 한다.
물에 떠 있는 방주교회와 물이 많이 올라와서 결국 못 들어간 용머리해안을 거쳐 무지무지 알찬 투어를 마치고 7시 반 미사에 다녀왔다. 성가를 부를 때면 이 안에 있는 40명의 목소리를 묻히게 하는 수녀님의 노랫소리가 인상적이다. 엄청난 성량탓인지 수녀님의 주위에서 공기들이 마구 진동하는 듯하다. 집에 돌아와 모슬포에서 온 방어님을 입에 넣는다. 뻘건 살이라 마치 생간 같이 생겼길래 젓가락질을 좀 주저했는데 아 요놈 참 쫀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