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일차
2016. 11. 20.
귓가에서 부서지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아침운동을 한다. 이사하고 처음 하는 운동이라 몸이 생각만큼 빠릿빠릿 움직이진 않는 것 같다. 아니 자비없는 맞바람과 나날이 추워지는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다. 정체 모를 푸른 식물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밭을 양옆으로 두고 힘 있게 땅을 찬다. 대칭으로 서있는 전봇대만 제외하면 해안도로만큼이나 탁 트인 길이라 답답하진 않은데 비슷한 풍경이 쭉 이어지는 직선도로라서 움직이는 차를 제외하면 약간 지루한 감은 있다.
직선도로의 끝에서 잠시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정한다. 이 길부터는 발끝으로 느낄 수 있을정도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길을 따라가다보면 왼편으로 이 동네랑은 좀 안어울리는 노란집이 하나 서 있다. 멀리서 보고 그 집까지만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거리가 짧아서 반환점을 수정한다. 뒤집어쓴 후드를 벗길만큼 지독한 바람이 불어댔으니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친절해야하는 게 맞을텐데 왜 방향을 바꿔도 빌어드실 맞바람인지 모르겠다.
히터로 따순 공기를 빵빵하게 주입하고 때이른 캐롤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가만히 앉아 뭘 하고 있긴 한데 막상 뭐 하나 되고 있진 않은 상황은 집에서나 유배지에서나 똑같은 듯해서 잠시 소름이 돋는다. 낮잠은 참아냈지만 여전히 특별한 뭔가를 하지는 않는 오후를 보내다가 게스트 형들이랑 밥을 해먹고 영화를 봤다. 부산행의 기차 액션씬을 보는데 모기 한마리도 내 다리에 앉아 아주 모기다운 액션을 하고 있다. 영화 첫장면의 고라니가 생각나서 평소처럼 찰싹 후려치려고 높이 들었던 손을 내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