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일차
2016. 11. 21.
어젯밤 게스트형이랑 우도에 가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일단 다시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집앞으로 해물짬뽕을 먹으러 간다. 다른 곳에선 9천 원 ~ 1만 원의 가격을 책정할 비주얼인데 동네 앞이라 덜 비싸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빗소리에 맞춰 짬뽕면을 신명나게 들어올리고 있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탱탱한 문어다리를 집게로 들어 먹기 좋게 자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해하고 있다.
비가 뚝 그칠 것 같진 않아서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사려니 숲으로 간다. 코스를 전부 걸을 수는 없기에 삼나무 숲이 더 가까운 붉은 오름 입구로 들어선다.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우비가 필요 할 것처럼 내리던 비는 숲 속에 안개만 남기고 사라졌다. 젖은 산책길 중간중간엔 까마귀만큼이나 많이 보이는 식물이 있는데 빠알간 열매를 맺은 게 누가 봐도 독을 품고 있을 것처럼 유혹적이다. 저게 뭔가 싶어 검색해봤더니 이름은 '천남성', 연관검색어로 '사약재료'가 뜰만큼 무시무시한 놈이다.
사약을 먹으면 입으로 피를 토하며 죽는 게 이놈 때문인데 약으로 쓰면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고 한다. 역시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나보다. 축축한 삼나무 숲을 걸어 나와 커피를 마시러 갔다. 아까 짬뽕을 애매한 시간에 먹어서 배도 고프다. 마침 빵쪼가리랑 아메리카노를 세트로 팔길래 하나씩 주문했다. 바닥 빵 위에 감자샐러드와 햄, 치즈를 놓고 뚜껑 빵위에 피자치즈를 뿌린 단순한 음식인데 먹으면 먹을수록 눈이 크게 떠지는 맛이다.
진짜 저녁밥은 한림으로 넘어가 ㅁㅅㅇ형을 만나서 먹었다. 매번 경영대 건물에 물마시러 갔다가 만났는데 이렇게 유배지에서 만나니 반갑다. 이 사람이 원래 탐라국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뜬금없이 은행에 갔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얼마 안 지나 관두고 집에 와서 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있단다. 이렇게까지 분명한 소신이 신기하면서도 크으 멋있다. 라고 치켜세우면서 고기를 얻어 먹는다. 형은 손전화에 삼성페이를 띄우고 계산대로 갔고 사장님은 삼성페이가 안 된다고 죄송하다고 이야기했다. 둘 다 죄송한 얼굴로 불판 앞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본다. 하핫 다음 번에 소고기를 먹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뒷뒷자리의 아저씨들의 열띤 대화를 엿듣고 있다. 잡다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론은 한 잔 더 하자 인듯 하다. 쓸데없이 집중한 것 같다. 내 자리까지 전해지는 술 내음에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창문에 머리를 기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