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일기] 모여라 딩동댕 FD

2월 23일 - 24일 (16만원)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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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 24일 (16만원)


원래 23일에 시급 1만5천원짜리 책상옮기기 알바를 구했었다. 그것도 아침시간 세시간이어서 짧게 일하고 4만 5천원을 당일에 받아오는 꿀오브 꿀. 그리고 지난 번 힐튼알바에서 4시간동안 멍 때리고 있을 때 EBS 모여라 딩동댕에서 전화가 왔다. 뜻하지 않게 일정이 겹쳐버려서 꽤 고민을 했다. 일당 8만원짜리 알바를 찾기도 쉽지 않지만 책상옮기기 알바가 굉장히 쎈 시급에 당일 지급, 게다가 시간대도 완벽했던지라 에스케이투마냥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던 중 책상 옮기는 일이 취소됐다는 문자가 왔다. (결과적으로 고민은 덜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괘씸하네 화계중학교.)


지금 계산해보니까 이틀간 28시간 일을 한 거라 16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최저시급에 못 미친다;; (28시간 X 6030원 = 16만 8840원) 그래도 무대, 방송관련 알바 특성상 워낙 대기시간이 길다보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다. 무대 하나에 조명, 와이어, 음향, 영상 그리고 연기하는 배우들까지 관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리허설 하나 하는데도 시간이 길어지곤 한다. 작년 방학 때 엑스트라 알바를 잠깐 해봤지만 이런류의 알바는 쉽게 적응도 안 되고 개인적으로 그렇게 선호하지도 않는다. 전체적인 전환이나 진행이 빨라야 일할 때 일 하고 쉴 때 푹 쉬는데 사공이 많다보니 여러 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일들을 메꾸느라 혼란스럽게 (하지만 그닥 하는 것 없이, 왜냐면 알바라서 뭘 해야할지 모르니까) 돌아다니다보면 한 건 없는데 힘든 이상야리꾸리한 상태가 온다. 그래도 뭐 여러 번 일해본 분들을 보면 자신이 뛰어다닌다고 해결될 문제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시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시더라.


아무리 '하니 이수민님'이 핫하다고 해도 적어도 미취학아동에게 번개맨의 존개감은 엄청났다. 텅 빈 관객석 앞에서 담당 PD랑 작가만 앉혀놓고하는 리허설까지만 해도 별 느낌은 없었는데 막이 오르기 전 틀어준 번개체조 음악에 무엇에 홀린 것 마냥 몸을 들썩이는 미취학 아동들을 보고 번개파워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2회차 공연에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번개체조를 두 번 했는데 그들의 흥은 이미 몸 밖으로 음악을 마중나온 상태였다. 내가 원피스보면서 정의구현에 힘 쓸 수 있는 멋진 사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뭐 이거 비스무리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 같다.


공개방송이라고 해도 결국엔 방송이 나가야하기에 몇 차례 NG도 구경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방송이나 뮤지컬 쪽에서 상당한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라서 그런지 NG 하나에 드립을 두 세개 얹어주신다. 거기 있는 애들이 센스있는 멘트까지는 다 이해하진 못할테니 아마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공연을 보시는 부모들을 위한 멘트인 것 같다. 아이에게 번개맨을 보여주는 건 엄빠니까 자연스레 모여라 딩동댕이 어필해야할 대상은 부모이기도 하다. (뭘 팔든 그 자리에 남성을 데려오는 건 여성인 것 처럼.) 하여튼 이틀 간 진행된 리허설과 본 공연을 가까이 보면서 한 무대를 위해 필요한 숨은 인력까지 볼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되던 리허설을 보다 지겨운 마음에 속으로 '아 번개맨이 뭐라고..' 했던 게 좀 부끄러울만큼 다들 열정이 넘치셔서 무대를 만드신 분들이 공을 들이신만큼 아이들의 환호에 보상을 받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별 신경쓰진 않았는데 어느새 알바가면 대우받는 나이가 되었다. 이쪽저쪽으로 나이를 확인하더니 "아 제가 동생이네요. 형님 말 편하게 하세요." 라며 너스레를 떠는 걸 보는데 3년 전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이제 무슨 알바를 가도 곧 군대가는 분들이거나 막 전역하신 분들이라 뭔가 괜히 반갑다. 속으로 '나는 저 때 뭐했는데' 하는 생각도 해보고. 그나저나 머리를 묶고 갔더니 아역배우님이 머리가 아이스크림 같다며...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난 오늘 처음보는 사이인지라 어색하기만 한데 어제 만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접근해와서 이거 뭔지 아냐고 자꾸 묻길래 '알고 싶지도 않아' 라고 나름 친절하게 대답했더니 그 이후로 말도 안 걸어준다. 아이 참 아동과 이야기하는 건 나에게 항상 힘들다.


공연이 끝난 무대, 번개맨의 활약에 감동받은 아이들이 떠나갈때쯤 나는 엔딩에 왕창 터뜨린 꽃가루를 하나하나 줍고 있었다. 나도 엄빠 손잡고 와서 정돈된 무대만 보고 가는 아동이었을텐데 이제는 일하면서 어지러진 무대 뒤도 봐야하는 알바가 됐다.


++

영광스럽게도 '2번 가시덩쿨' 역을 맡아 가시덩쿨과 한 몸이 되어 무대에 잠깐 등장한다.

분명 식물 역할이었는데 무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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