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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킷이지 Feb 22. 2017

[탐라유배일지] 왜 침대가 있는데 잠을 못 자니

66일차


2016. 11. 25.


6시 반. 이 시간에 일어나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전혀 뛰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걸으면 너무 추워서 뛰고 말았다. 어제 그 맥도날드 방향으로 뛰어가니 금방 바다가 나왔고 바닷길을 따라 달린다. ㅅㅈㅎ은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앞으로 뛰어나갔고 ㄱㅎㅂ은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느릿느릿 뒤처진다. 3킬로를 못 뛰고 내가 ㄱㅎㅂ과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 아침운동은 끝이 났다. 이와중에 ㅅㅈㅎ은 5km는 채워야한다며 정신없이 움직인다. 


어젯밤부터 우당탕 소리내면서 민폐를 끼쳤더니 우리빼곤 다들 체크아웃하러 나간다. 따로 조식은 없다길래 시장에 불이 하나둘 켜지자마자 오메기떡 8알을 품고 돌아와서 커피랑 함께 먹었다. 10시가 다 되어 스파크를 빌렸다. 다행히 세 명의 짐이 들어가긴 하는데 뒤에 탄 ㄱㅎㅂ은 매우 좁아보였다. 가슴 아프지만 내가 가슴 아픈 표정을 지으면 더 아플까봐 모른 척 하고 평대리로 간다.


ㄱㅎㅂ이 쉬림프박스를 먹고 싶다해서 평대리로 가는 거였는데 도착 15분 남기고 인스타에 휴무공지가 올라온다. 차를 돌려 이효리님이 다녀갔다는 카레집에 간다. 오픈 전에 갔는데도 웨이팅이 한 시간이다. 함덕 해변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으려나 했는데 두 명은 이미 프사를 건지시고 계신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더니 꺄르르꺄르르 만족해한다. 자식들이 내 사진은 똥같다고 구박해서 사진기를 가방에 쑥 집어 넣었다. 서우봉에 살짝 올라갔다오니 카레집에서 전화가 온다.


문어카레는 약간 심심하면서 느끼했는데 딱새우카레는 매콤하면서도 깔끔했다. 햇빛이 바로 드는 통유리문 옆에 나란히 앉은 셋은 그릇을 싹싹 비웠다. ㅅㅈㅎ이 이번 여행에서 먹은 것들에 별 점을 매겨야 한다고 해서 어제 먹은 전복김밥까지 더해 별점을 매겼다. 난 가차없이 전복의 탈을 쓴 계란김밥에 0점을 주었다. 커피를 마시러 세화카페에 왔다. 카페들은 경쟁하듯 바다 앞 돌담에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놨다. 가만히 앉아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짝에 초강력 햇빛이 들어와서 자리를 떴다. 아 세화 오일장에 들러 호떡이랑 핫도그도 입에 물고서.


ㄱㅎㅂ이 급성 발날이 아픈 병을 호소해 오름에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애매한 시간 때문에 배낚시 예약도 실패했다. ㄱㅎㅂ의 추천으로아니 ㄱㅎㅂ의 친구의 추천으로 중문으로 카트를 타러 간다. 드라이버 ㅅㅈㅎ은 6시간동안 운전을 하고 이어서 카트를 탄다. 아주 프로다운 녀석이다. 하지만 그의 카트는 자주 멈춰섰다. ㄲㄲㄲ  나중에 깨달았지만 카트를 타고 난 뒤로 엉덩이가 아프다. 엉덩이에서 끌어올린 힘으로 파워운전을 해서 그런 가보다. 


6년만에 성 박물관에 왔다. 다른 건 기억조차 안나는데 1층 청각파트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누나는 생생하다.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심장 두근댄다. 전반적으로 박물관의 모습이 예전 기억과 비슷하다. 6년간 변함없이 관리가 잘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업데이트가 안 됐다는 얘기다. 이래서는 재방문율이 바닥일 것 같다.


저녁에는 서진갈비를 먹으러 갔다. 이사오기 전에 서 너번은 넘게 가본 것 같아서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동네사람이라도 이렇게 매일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것보면 참말로 맛집이었구나 싶다. 갈비만 먹고 서귀포에서 가서 잠을 잘 거라서 굳이 사장님한테 연락을 안드렸는데 설마설마했는데 미취학 아동이 나를 발견했다고 전화가 왔다. 연락도 없이 딱 마주치게 돼서 민망하기도 했는데 겨우 이틀 만에 다시 보는데도 반가웠다. ㄲㄲ 아 고기는 ㅅㅈㅎ이 사줬다. 이렇게 안 쓰면 나중에는 밥을 안 사줄 것 같은 참 좋은 친구다.ㅎ


호텔 청소 알바다닐 때 지나가면서 '아 이런 데는 알바 안 구하나' 라고 생각했던 좋은 건물이 오늘 하루 묵을 호텔이다. 5만 얼마에 예약했으니까 세명에서 게스트하우스 가는 것보다 이득이다. 포마드를 발라 깔끔히 머리를 넘긴 프론트 직원분을 보자마자 아 좋은 호텔이구나 라는 걸 직감했다. 9층이라는 층수는 마음에 들었지만 뒷골목 뷰라는 건 조금 아쉬웠다. 침대는 싱글 하나, 더블 하나. 사이좋게 셋이 잘 수 있는 멀쩡한 방이었지만 내기를 시작한다.


가위바위보, 사다리타기, 동전던져서 커피포트에 넣기 3종 경기를 했는데 예상대로 ㅅㅈㅎ이 1등을 해먹었다. 매번 저러는 게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쯤하고 ㄱㅎㅂ과 사이좋게 누웠어도 됐지만 두 번째 내기를 시작했다. 무작위 채널을 선택해서 사람이 많이 나오는 채널을 선택한 사람이 이기는 거다. 7판 4선제였는데 3:2로 밀리다가 ㄱㅎㅂ이 두 번 연속 아무것도 없는 채널을 골라서 내가 이겼다. 결국 나는 지금 혼자 더블 침대에 누워있다. 옆에서 슬그머니 진입하는 ㄱㅎㅂ 엉덩이를 걷어차고 밖으로 나왔다.


서귀포에 와보긴 했는데 밤에 가본데는 없어서 가까운 새연교에 갔다. 10시가 안돼서 새섬도 열려있길래 초입만 들어갔다가 나왔다. 가로등 빛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두운 풀숲에서 낚시대를 든 아저씨가 나왔던 것 빼곤 무탈했던 밤마실이다. 들어오는 길에 과자랑 맥주를 사서 마신다. ㄱㅎㅂ이 통화를 하러 나간 사이에 작은 맥주 한 캔 마신 ㅅㅈㅎ은 이미 잠들었다. 혼자서 나혼자산다를 보면서 홀짝홀짝 마시다가 나도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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