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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킷이지 Feb 22. 2017

[탐라유배일지] 바다의 아들의 멀미

67일차


2016. 11. 26.


나는 당연히 새벽에 ㄱㅎㅂ이 알아서 침대위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바닥에 얌전히 깔려있다. 왜 안 올라오고 거기서 잤냐고 안쓰러운 눈을 하고 물어봤는데 그는 'ㅁㅊ놈아 니가 대각선으로 잤잖아' 라고 대답했다. 내가 연민 섞인 표정을 지으면 친구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까봐 속으로만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바닥의 찬기운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밤을 보낸 ㄱㅎㅂ만 일찍 일어나고 ㅅㅈㅎ과 나는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아침부터 우도에서 못 먹어서 억울했던 흑돼지 수제버거를 맛보러 간다. 이 시간부터 버거먹으러 오는 인간은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하면서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하나 둘씩 들어오더니 다섯 테이블이 찬다. 직원분이 친절하게 3등분 해준 수제 버거를 입에 넣는다. 노오란 갈릭딥핑소스를 때려부은듯한 마늘 버거는 맛있었는데 이에 흡착될 정도로 꾸덕꾸덕한 땅콩소스가 흘러넘치는 땅콩 버거는 늬글늬글하고 좀 별로다.


오늘은 배낚시와 회 먹기 빼곤 이렇다 할 계획이 없어서 여유롭게 올레 시장을 한 바퀴 돌고있다. 흑돼지 꼬치도 먹고, 흑돼지 고로케도 먹는다. 아 그 전에 주먹다짐하는 아저씨들도 만났는데 나랑 얘기하던 ㅅㅈㅎ이 갑자기 옥타곤 가까이로 가길래 '아 저 친구가 불의를 보면 못 참는구나~'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그저 가까운 1등석에서 관전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는 걸 알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침부터 돼지처럼 돼지만 먹어대다가 이제는 귤하르방도 먹는다. 이중섭 거리에서는 시장이 열렸는데 이때부턴 화장실이 급해서 뭘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찾은 화장실마다 휴지가 없었다는 것 빼곤.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맞으면서 문어짬뽕을 먹으러 모슬포로 간다. 떠먹은 짬뽕국물의 양보다 내 이마에서 쏟아내는 육수의 양이 많아질 때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시간이 좀 남으면 송악산이나 한 바퀴 돌고오려고 했는데 배낚시 예약 전화를 하니까 선장님이 지금 오래서 차귀도로 방향을 틀었다. 배낚시 역시 ㄱㅎㅂ이 아닌 그의 친구가 추천해준 코스로 우리 중 유일한 배낚시 경험자인 ㄱㅎㅂ은 개꿀잼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약속했다. 


비가 와서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가족단위 손님들도 꽤 있다. 혹시나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미취학아동들과 같은 배를 타게 될까봐 겁나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들어오자마자 '비가 와서 물고기가 좀 잡힐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잘 모른다고 이방인 코스프레하셨던 분이 우리가 탈 배의 선장님이시란다. 돈을 내고나니까 비오는 날에도 물고기가 잘 잡힌다고 미소지으시는 그 분을 보며 헐리웃에서만 보던 입금의 위력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요만한 고깃배를 처음 타봐서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는데 규칙적으로 흔들리니까 금방 익숙해진다. 하지만 빌어드실 새우은 바늘에 잘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자꾸만 새우 대신 왼쪽 목장갑을 바늘에 끼웠다. 그러는동안 내 옆에 ㄱㅎㅂ은 두 마리를 한 번에 낚았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바다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그 뒤로 두 차례 장소를 옮기는 동안 나는 수 십마리의 새우를 바다에 빠트렸고 이쯤되니 낚시가 아니라 물고기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꽤나 배가 흔들거리는 이 자리에서 ㅅㅈㅎ은 30분간의 부진을 씻어내는 듯이 미친듯이 고기를 잡아올렸다. '요놈은 큰놈이야' 라고 외치면 말하는대로 정말 물에서 큰 놈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홍대에서 인형 뽑기를 하는 인형 뽑기 고수 같아보였다. ㅅㅈㅎ이 고장난 자판기같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부지런히 뽑아내는 동안 나도 우럭 한 마리를 건졌다. 입가에 바늘 피어싱을 한 어류와 눈조차 마주칠 수 없어서 바다의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바다의 아들은 평소보다 훨씬 허얘진 얼굴로 힘없이 앉아있었다. 


하나, 둘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우리의 일행, 바다의 아들도 있었다. 바다의 아들을 뒤에서 힘차게 밀어 바다에 넣어주고 싶었으나 그 마음을 잘 참아내고 배를 돌려 땅을 밟았다. 열심히 잡은 손바닥 만한 물고기들을 바다로 돌려보내주고 비린내나는 몸뚱이를 끌고 탄산온천에 들어왔다. 밀키스색 온탕에 들어가있을때까지만해도 기대 이하라고 하더니 탄산천에 들어가더니 "오옷!!!" 하는 반응이 왔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ㄲㄲㄲ 주말을 피해 한 낮에 또 한 번 방문해서 누워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탕을 나왔다.


고등어회를 먹으러 다시 모슬포항으로 왔다. 고등어회는 나에게 '웩!!'도 아니었고 '오옷!!"도 아니었는데 착한 친구들은 회를 잘 안 먹는 내가 내가 별로 못 먹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아 일부러 많이 처먹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생각보다 많이 처먹네...' 하는 표정이길래 그쯤에서 그만 먹었다. 게하로 들어가는 길에 모슬포 홍마트에서 과자를 샀다.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고 고급진 프렌치 바닐라맛 엑설런트 아이스크림도 한 박스 샀다. 굳이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이긴 사람만 먹기로 한다. ㄱㅎㅂ은 가위바위보를 너무 잘해서 몽쉘 한 박스를 다 비우고 액설런트도 6개나 처먹었다. 쿠쿠다스와 사또밥도 골고루 섭취해 15분만에 앉은 자리에서 2천키로칼로리를 흡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 다 먹고나선 진짜 토도 하려고 했는데 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구 하나 만족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과자 파티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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