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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희킷이지 Feb 22. 2017

[탐라유배일지] 혼자 있는 내 모습

70일차


2016. 11. 29.


어젯밤에 누워서 보다 잠든 영화 <그물>을 마저 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개운한 영화는 아니라서 기운찬 세수 한 번 하고 운동을 하러 갔다. 열심히 뛰고 있는데 문득 작년 이맘때의 겨울에도 나름 열심히 뛰고 있던 게 생각난다. 그때도 추운 겨울내로 몸 안에 관성을 만들어 점점 불려온 살 좀 없애고 건강하게 살자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은 올해가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다.


형이 알바하는 막국수 집에서 막국수를 먹는데 사장님이 돔베고기도 주셨다. 유배와서도 돔베고기는 처음 먹어본다. 진짜 도마위에 고기가 나왔는데 살코기와 비계 비율이 마음에 든다. 고기에는 당연히 장을 주실 줄 알았는데 막국수 소스 같은 걸 주셔서 좀 의외였지만. 친구들이 면회왔을 때 이런 걸 먹였어야 하는데 국수면발만 먹여서 좀 아쉽다. 등록금 다 내면 금방 부자가 될 줄 알았는데 계좌가 항상 배고픈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집에서 20분이 안 걸리는 한경도서관에 간다. 시설이 동부도서관만큼 좋진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사람이 무지하게 없고 조용하다. 열람실에도 한 두 명쯤 앉아있는 것 같다. 간만에 밀린 일 좀 하려 컴퓨터를 들고 갔는데 부지런히 밀린 일기만 쓰고 있다. 그래도 유배초반에는 어제 일기는 오늘쓰고, 오늘 일기는 내일 쓰는 구조였는데 언제쯤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루쯤은 일기에 정말정말 쓸 얘기가 없을정도로 그냥 천장보고 누워있어야 하나.


유배지에 혼자 있으면서 드문드문 발견하는 내 꼴이 참 새롭다. 혼자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많아지니까 바쁘게 움직이던 입을 다물고 자연스럽게 나를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모습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던 인터뷰이의 말이 이제야 상당히 공감된다. 


운동 끝내고 패딩을 망토처럼 두르고 집에 가는 길에 ㅅㅎㅇ형한테 전화가 왔다. 땀에 젖은 옷에 바람이 부딪혀서 훌쩍훌쩍대고 있는데 형은 내 목소리만 듣고도 부럽다고 한다. 원래 11월 안에 오기로 해서 쏘카 탈 준비하고 있었는데 흥. 


쿼티불능자는 카톡을 보낼 때 여전히 음성메시지를 쓰고 있다. 오늘은 하도 못 알아먹어서 시리랑 싸웠다가 빠르게 사과를 했다. 인공지능의 '괜찮아요'라는 말에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내 손가락이 잘 못한 건데... 왜 


하루에 운동을 두 번했더니 몸뚱이가 뻐근해져서 일찍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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