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일차
2016. 12. 1.
덮고자던 이불을 발로 대충 밀어서 구겨놓고 동네 한 바퀴를 돌러 나왔다. 긴팔을 입었는데도 바람이 소매를 비집고 들어와서 많이 걸어도 땀이 날 수 없을 것 같다. 주민센터 헬스장 가는 길을 지나니까 또 다른 큰 길이 나온다. 마을만 조금 벗어나도 이렇게 큰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신기하다. 되도록이면 팔자로 안걸어보려고 신경쓰고 있는데 조금만 한눈을 팔다보면 어느새 두 발의 각이 90도가 된다.
히터 앞에 앉아 국터뷰를 하나 썼다. 이대로 가다간 올해도 넘길 것 같아서 매일매일 불안하다. 원래 처음에는 빡세게 세이브 원고를 써놔서 부지런히 예약 포스팅을 해둘 예정이었는데 막상 8월부터 돌이켜보면 예약 포스팅은 커녕 원래 목표대로 하루에 두 편씩 쓴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지난 11월에는 한 달동안 5편 정도 썼던 것 같다. 어우 좀 심했다. 스스로 한 약속이니까 그래도 지켜야한다. 지켜야만한다.
점심으로 비엔나 소시지랑 스크램블 에그를 먹는다. 소시지에게 다리를 만들어주면서 영양성분표를 봤는데 9개만 먹어도 벌써 칼로리가 200이 가까워진다. 고작 소시지 9개가 헥헥대는 3킬로 달리기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생각하니까 소시지가 괘씸하다.
일 끝나고 돌아온 형이랑 12월의 첫날을 맞이해 인바디를 하러 보건소에 왔다. 올해 1학기 웨이트 트레이닝 수업을 듣기 전에 했던 게 마지막 검사였는데 그때보다 몸이 망가졌으면 망가졌지 좋아졌을리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기계에 올라섰지만 마음 속에서 최소한의 기대감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느릿느릿 검사결과가 인쇄되는 동안 절대 건강하다고 수 없었던 하루하루를 떠올린다. 결과는 기대이상으로 똥이었다. 나는 우리 몸의 70퍼센트는 물로 이루어졌다고 배웠는데 내 몸의 26퍼가 체지방이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믿을 수 없다며 망할 기계놈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멱살을 찾지 못해 그만뒀다.
머릿속에 있는 26이라는 숫자가 계속 몸을 움직이게 해서 평소보다 운동을 더 오래 했다. 26세에 26퍼니까 27세에는 27퍼 될거라는 친구놈의 이야기가 훌륭한 예언이 되지 않도록 힘껏 저항해봐야겠다. 올해 영화 곡성을 본 뒤로는 무서운 상황에선 곡성의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내 몸의 지방이가 떠오를 것 같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