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일차
2016. 12. 5.
편의점에서 백종원 아저씨 김밥을 하나 사들고 제주시로 출근을 한다. 간만에 먹는 아침 쌀밥이라 찬김밥이라도 맛이 좋다. 몇 번 왔다갔다 했다고 협재까지는 창밖 풍경이 익숙하다. 그 뒤론 매 번 창문에 뺨을 들이밀고 잠들어서 정류장 이름도 낯설다. 우리집은 제주신데 어떻게 된 게 서귀포시내 가는 것보다 제주시내 가는 게 더 멀다. 일주버스 종점인 시외버스터미널에 비틀대며 내려 ㅈㅇ형 차로 환승한다.
처음엔 청소알바라길래 엄청나게 빡셀 줄 알았다. 귤밭을 앞에 둔, 볕 잘 드는 공사현장에 도착한다. 완성되면 사무실이라는데 높은 천장에 탁트인 전망이라 뭔가 일은 잘 안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무 기둥이 얽혀있는 천장을 꽃으로 채운다. 아 형이 꽃이름도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드라이플라워가 되는 꽃들이란다. 형은 플로리스트 겸 인테리어 일을 한다는데 직접 보니까 연결고리가 있나 싶던 두 분야가 많이 가까워 보인다.
빨강초록 수박색 전선이 삐져나온 곳에는 전등을 단다. 처음엔 불에 그을린 거대한 나무뿌리가 쇠사슬로 천장에 달려있길래 저건 뭔가 싶었다. 그 나무뿌리에 소켓달린 전선을 몇 줄 휘어감고 커다란 에디슨 전구를 달아놓으니 느낌있는 나무등이 되었다. 높은 조도가 필수적이지 않은 공간에는 요즘 에디슨 전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사다리 아래에서 이것저것(꽃, 와이어, 전선, 전구) 가져다주면 되는 역할이라 힘들 건 없었다. 와이어를 사용해 꽃을 다발로 만들어 사다리 위로 올려주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꽃 자르는 전지가위로 전선 피복을 벗기다 구리선을 몇 번 끊어먹어서 좀 난감했다. 빌어드실 나 통신병인데. 니퍼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셀프로 토닥여줬다.
오후 세 시까지 일을 빠르게 마무리 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간다. 블로그엔 이호테우해변 맛집 닐모리동동이라고 나오는데 이호테우해변 근처라기보단 그냥 탐라국공항의 윗편에 있다. 창밖으로 보였어야하는 훌륭한 바다는 굉장히 큰 포크레인으로 가려져있다. 연말이라 보도블럭 공사한단다. 네시가 가까워진 시간 꽥꽥 울어대는 배에 파스타를 한 접시씩 넣는다. 작은 사이즈도 있다는 직원의 친절한 권유를 단칼에 거절하고 피자도 크게 한 판 먹는다.
트레드밀 위에서 아주 미쳤지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솟구치는 죄책감에 눈가가 젖어온다. 물론 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