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차
2016. 12. 8.
아침부터 제주시내로 가는 일주버스를 탄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부딪혀가며 두 시간을 달려가서 ㅈㅅㅇ형을 만났다. 간만에 자극적인 두루치기 양념을 입가에 묻히려 했더니만 아주 륙지사람 아니랄까봐... 결국 고기국수 앞에 앉았다. 어느새 대리님이 된(사실 된지 좀 됐다고 함...) 형은 제주에 출장을 왔단다. 플스방 패드잡고 같이 낄낄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통화하는 것만 봐도 뭔가 직장인스러워서 신기하다. 인턴이 된지 일주일이 된 ㄱㅎㅂ의 회사 생활 좀 묻다가 내년 5월 자전거 여행은 제주로 오자고 꼬셨다. 커피 한 잔 할 시간 없을 줄 알았는데 비행기가 연착돼서 무척 도시스러운 카페에 조금 앉아있다가 나올 수 있었다.
택시는 형을 태우고 공항으로 갔고 나는 지난 번에 주차 안내 알바를 하다가 터져버린 바지 수선 맡기러 간다. 다시 봐도 정말 쫙- 터지고 말았다. 본사에 보내야 해야해서 보름은 넘게 걸린단다. 지하상가를 나와 ㅅ계장님을 만나러 간다. 교직원 교육때문에 탐라국에 오셨다해서 계신 호텔로 찾아간다. 외관은 칙칙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반짝반짝한 호텔로 들어가 화장실부터 찾는다.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시는 계장님과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시는데 내 근황이라고 할 건... 정말 너무나 심플해서 괜히 제3자의 근황을 끄집어내 소개하다가 내년 졸업작품 계획을 말씀드렸다. 뭘하든 대책도 없고 플랜B도 없는 내가 스스로도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데 항상 잘 할 거라고 얘기해주시니까 민망하다. 이번 교육 때 받으셨다는 기념품, 손톱 깎이 세트를 받아들고 호텔을 나왔다.
갑자기 따뜻한 날씨에 반팔 입고 제주시내를 걷는다. 시내에 온 김에 영화를 한편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오늘도 소비력으로 가득찬 이마트나 한 바퀴 순회하고 순환버스 탔다 .버스에서 책을 보는데 어질어질해질만큼 길들이 굽이친다. 짠내 가득한 한림항 주변의 하늘빛이 서서히 가로등 빛이랑 비슷해질때쯤 ㅁㅅㅇ형이 왔다. 유배지에 있는 동안 열심히 털어먹으려 했는데 다음 주면 서울에 간다고 한다.ㅠ 생갈비를 흥겹게 구워먹고 어김없이 이디야에 왔다. 형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었는데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나와서 얼음 몇 개만 넣아달라고 부탁한다. 알바님이 주걱으로 얼음 두 세개를 들어올리는 순간 얼음 하나가 카운터 너머 형쪽으로 미끄러진다. 고작 얼음 하나 날아오는데 수류탄이 날아오는 것 마냥 놀라면서 몸을 휘청인다. 그 꼴이 너무 웃겨서 난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었고 알바님과 형은 열심히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제가 죄송합니다' 를 주고 받고 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항상 '다음 주엔 집 안에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 단백질을 미리 섭취했으니 이제 운동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