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탐라유배일지] 톱과 글라인더

85일차

by 태희킷이지
KakaoTalk_Moim_4yaiFGsmK2HJKJ90DZzMpPXyl1QwOl.jpg
KakaoTalk_Moim_4yaiFGsmK2HJKJ90DZzMpPXyl0WqJP.jpg
KakaoTalk_Moim_4yaiFGsmK2HJKJ90DZzMpPXyl1jNV7.jpg


2016. 12. 14.


8시에 출발하기로 해서 알람을 촘촘하게 맞춰놨는데 ㅈㅇ형과의 합의하에 좀 더 밍기적대다가 9시에 집을 나섰다. 알바현장에 도착하고 형이 에폭시와 붓을 사러 갈 동안 나는 부지런히 돌을 옮긴다. 구멍 뻥뻥 뚤린 현무암이라 그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는데 보기보다 무게가 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돌을 두 세개 옮기고, 1분간 앉아 있고를 반복하다가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스테인레스 판을 씌워 싱크대를 만들 나무 상판을 자른다. 형이 그려준 선을 따라 슬근슬근 톱질을 시작하는데 마음처럼 매끄럽게 잘 되진 않는다. 인성이야 어찌됐건 톱질은 잘했을 놀부가 존경스럽다. 팔에 잔뜩 힘을 줘서 세로로는 잘랐는데 가로로는 어떻게 잘라야 할 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형이 글라인더를 가져왔다. 제가 해보겠다며 한 손으로 글라인더를 꽉 쥐고 상판에 슬쩍 갖다대니 위이이잉~ 하면서 글라인더 날이 깊숙히 들어가는 게 아니고 통통 튄다. 오 무섭다. 못하겠다. 형이 하는 걸 보니까 발로 상판을 누르고 두 손으로 가져다 대야하는 거였다.


글라인더가 지나가는대로 나무는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내가 했던 거친 톱질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글라인더로 나무를 자르면 나무의 단면은 시커멓게 그을리고 만다. 역시 모든 것은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내에 나온 김에 아리따움에서 ㅁㄴ가 선물해준 기프티콘으로 헤어오일을 받아왔다. 헤어라인에 바로 눈높이에 진열된 걸 보니 굳오일이 틀림없다. 부지런히 발라서 내 머리에 새 생명을 주고 싶다. 택배차인지 버스인지 헷갈리는 일주버스를 타고 협재로 퇴근해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륙지로 간다는 ㅇㅈ님을 만나 돈까스를 먹었다. 화창한 날씨의 탐라국을 못 보고 가는 ㅇㅈ님을 위해 오늘도 역시 날씨가 똥 같다. 마지막 날 날씨가 좋으면 억울할까 봐 하늘이 배려하는 듯 하다.


자꾸만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내 손전화를 위해 ㅇㅈ님이 폰케이스를 하사해 주셨다. 새옷을 입으니 더 훌륭한 기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터리는 여전히 빠르게 닳는다. 운동도 할 겸 집으로 걸어가겠다고 마음먹고 금능해변까지 차분히 걷다가 갑자기 돌풍을 마주쳐 콧물이 터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잠시후 702번 버스가 온다는 정류장 언니의 목소리에 설득당해 버스에 올랐다.

새벽 1시, 건너편 텐트에서 5분 동안 쉬지않고 셀카를 찍어댄다. 계속 이어지는 찰칵소리에 화가나서 오늘 밤은 신나게 이를 갈아드리려고 마우스 피쓰를 뺐다. 근데 빼다가 마우스피스가 부러졌다. 역시 마음씨는 이쁘게...

KakaoTalk_Moim_4yaiFGsmK2HJKJ90DZzMpPXyl0j6G5.jpg
KakaoTalk_20161214_18294950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탐라유배일지] 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