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탐라유배일지] 집에 가는 날

86일차

by 태희킷이지
KakaoTalk_Moim_4yaiFGsmK2HJKJ90DZzMpPXykZYtZ7.jpg


2016. 12. 15.


테러수준의 알람이었지만 요리조리 잘 피해 결국 9시에 기상했다. 오늘은 탄산온천에서 몸 좀 지지고 온다는 ㅈㅇ형을 만나기로 해서 오전부터 운동을 하러 간다. 취업기념여행인데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맛있는 걸 사줘서 사양않고 많이 먹었다. 오늘의 메뉴라는 아보카도 새우를 먹었는데 아보카도를 처음먹어봐서 설렜다. 찰흙맛이 날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식당에 앉아있는 동안 해가 쨍쨍하기도 하고 바람이 무지하게 세게 불기도 하고 투두둑 비도 살짝 떨어지더니 이제는 우박도 내린다. 1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네 개의 날씨가 지나갔다. 형이 모슬포 쪽으로 간다길래 언능 가방을 챙겨서 차를 얻어탔다. 오늘은 공천포에 갈 생각이다. 3시인 지금 출발해도 도착하면 5시, 다시 집에 오려면 7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기껏해야 두 시간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좀 가야겠다.


중간에 이마트에 들러 야끼소바를 세 봉지 샀다. 가구 당 하나씩 분배하면 될 것 같다. ㅈㅇ형이 모슬포까지 태워다줘서 좀 일찍 도착할 줄 알았는데 전기버스 충전을 기다리느라 결국 다섯 시에 도착했다. 카페에 손님이 와계셔서 간만에 미취학아동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물론 미취학 아동은 닌자놀이를 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이 동네 하늘 사진도 찍고 싶고 ㅁㅇ누나네 집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설득했다.


하지만 설득은 실패했고 미취학아동은 결국 삐졌다. 언제나 너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삐지면, 이 세상은 삐질 일 투성이라고 얘기해봤지만 놀아주지 않는 이 몸은 무조건 나쁜 삼촌이란다. 이런저런 비유와 상황을 끌어와 열심히 설명했지만 미취학아동의 나온 입은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 그걸 지켜 보고 있던 사장님이 미취학아동을 부드럽게 부른다. 인상 팍 쓰고 옆에 앉는 미취학아동을 안아주면서 장난을 건다. 기분이 풀린 게 민망한지 입은 삐쭉거리는데 눈으 웃고 있다. 아빠는 위대하다.... 그리고 역시 한 가지 전략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맥락에 따른 전술의 변화는 미취학아동을 상대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이다.


중산간에 눈이 와서 늦을 것 같았던 ㅇㄷ형이 왔다. 9시쯤 도착하는 게스트가 있어서 아쉽지만 얼굴만 보고 가려는데 고산까지 태워준단다. 안그래도 나이를 드실만큼 드신 무쏘에게 먼 길을 오고 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감사하다. ㅎㅎ


121582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탐라유배일지] 톱과 글라인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