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차
2016. 12. 18.
아침을 건너뛰어 고픈 배를 신앙으로 채우러 성당에 간다. 매번 토요일 저녁미사에 가서 일요일 미사의 분위기가 새롭다. 일요일 주일미사라고 사람이 더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성가대가 있어서인지 미사 스케일이 커보인다. 앞에 앉은 애기들이 낄낄대는 걸 구경하고 처음 들어보는 성가를 열심히 따라부르다보니 한 시간이 훅 간다.
몇 시간째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눈이 맹하다. 화면에 뭐가 묻었길래 손톱으로 열심히 긁어내고 있었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보니 마침표다. 쉬어야겠다싶어 5분쯤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웹툰을 보고 있다. 혼자 웃고 있는데 맡긴 짐을 찾으러 온 게스트랑 눈이 마주친다. 민망한 마음에 아주 부자연스럽게 커피 한 잔 하시겠냐고 물었다.
게스트 분은 배달의 민족에서 일 하신다길래 거기 갈라면 열심히 살아야 되냐고 물어봤다.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하셨다가 곧바로 "아니요. 재밌게 살면 돼요." 라고 말을 바꾸신다. 내년엔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신다는 걸 보니 확실히 재밌게 살고 계신 것 같다. 나는 열심히도 말고, 재밌게도 말고, 그냥 살고 싶다.
놀랍게도 또 낮잠을 잤고, 일몰시간을 또 놓쳤다. 지는 해를 따라잡아 보겠다고 어제처럼 열심히 뛰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냥 멀리서 하늘이 꿈틀대는 걸 지켜보다 돌아왔다.
탐라로 가족여행왔던 ㅈㅎㅇ형이 저녁 먹으러 오신다길래 시간 맞춰 운동을 하러 왔다. 기껏 배고프게 해놓고 내일 온다고 한다. 사부님이 닭가슴살을 두 개씩 먹으래서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다. 진짜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부지런히 챙겨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먹는데도 질린다. 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