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8일차
-
절대 기억이 안 나서 유배일지를 몰아쓰는 거 아님.
밀린 일하느라 대부분의 하루를 비슷하게 보내서 어쩔 수 없음.
-
2016. 12. 24.
씨유에서 백종원 아저씨 도시락을 하나 까먹고 도서관에 반나절 머물렀더니 어느새 거룩한 밤이 됐다. 기껏 성당 사무실로 전화해서 성탄전야 미사시간도 물어봐놓고 멍하니 입 벌리고 있다가 미사에 늦었다. 생일잔치 날이라 빈자리가 없을만큼 성당이 꽉꽉 찬다. 어렸을 땐 구유 앞에 서있기만 해도 설렜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트리 사진과 함께 '형제, 자매님 성탄 축하드립니다' 라고 엄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성당에서 선물로 준 수면양말을 신고 리사무소 2층 헬스장에서 고요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2016. 12. 25.
유배올 때까지만 해도 가득 차있던 봉숭아물이 손톱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 여기선 제대로 된 눈을 본 적이 없는데... 큰일이다.
지난 번에 형이 수월봉만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날 보더니 자신은 당산봉이 더 좋다고 하길래 오늘은 당산봉으로 산책을 가본다. 차귀도포구 방향으로 뻗어있는 시원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당산봉 초입이 나온다. 경사를 보니까 입구에서부터 등산스멜이 나지만 일단 올라가본다. 높이가 확실히 달라서 더 먼 동네도 한 눈에 보인다. 해질 때 오기 무서울 것 같은 것만 빼면 전망을 보기엔 훨씬 훌륭한 장소인 듯 하다.
2016. 12. 26
올해 안에 국터뷰를 끝내겠다는 생각에 의자와 한 몸이 된지 열흘이 넘었다. 오늘도 밥 먹고 하늘 보고 운동하는 시간 빼곤 온통 앉아만 있었다. 밥보다 빠른 알리오올리오를 하루 걸러 한끼씩 먹으니까 이제는 그릇에 담아 먹을만해진 듯 하다.
2016. 12. 27.
이 동네 바람이 더 무서워졌다. 산책도 포기했다. 진정 유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