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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유배일지] 숙제 끝

99일차

by 태희킷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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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8.


드디어 숙제를 다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려 가만히 못 있을 것 같아서 시내 가신다는 형 차를 얻어타고 협재로 나온다. 날이 하도 맑아서 차창 너머로도 한라산의 흰머리가 선명하다. 며칠 뒤엔 저 위에 서있을 생각을 하니 두근댄다.


바다에 바짝 붙어 손가락이 시릴때까지 사진을 찍다가 바다 바로 보이는 카페로 들어왔다. 날이 맑긴해도 추운 날씨에 몸이 쪼그라들길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계산을 하던 알바님이 물어본다.


- 영수증 있어요?

- 네??


무언가 잘못 됐다는 걸 인지하신 알바님의 동공이 흔들린다. "너님 손에 있어요." 라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당황스러워 그러지 못했다. 둘 다 터져서 낄낄대다가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왔다. 따뜻한 잔을 두 손에 쥐고 있기만 해도 온 몸에 스물스물 여유가 퍼져나간다. 그간 마우스 패드로만 쓰던 책을 이제야 천천히 읽는다.


숙제검사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없던 숙제를 셀프로 만들어 놓고 느끼는 이 해방감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예약 게시물을 걸어놔서 엄밀히 따지면 내일 끝이 나지만 덕분에 나는 오늘부터 행복하다.


금능해변으로 넘어가 콧물이 세상 밖으로 터져나올때까지 지젼급 노을을 구경한다. 간만에 사진을 원없이 찍어대다보니 손전화도 사진기도 배터리가 나갔다. 유배가 끝나면 중고로 사두고 아직 한 롤도 찍지 않은 필름 사진기를 사용해봐야겠다.


지난 번에 보다 만 영화 어카운턴트를 봤다. 주인공의 우람한 팔뚝을 보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채찍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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