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일차
2017. 1. 15.
아침 미사로 일요일을 시작한다. 햇빛도 들고 하늘도 맑길래 수풍석 박물관에 가려했는데 주말에는 안한단다. 날 좋은 날엔 김녕이라는 생각에 찾아봤더니 여기선 버스만 3시간을 타야한다. 나가긴 나가야 하는 날씨, 5km 거리에 새신오름이라는 데가 있길래 차를 타고 나간다.
아침 수저를 늦게 들어서 점심식사도 평소보다 늦춰졌다. 중간중간 찬물을 얼굴을 끼얹어가며 떡볶이를 먹는다. 맵다고 혀를 내밀면서 참 많이도 먹었다. 배가 부르니까 나가기 좋은 날씨가 아니라 낮잠 자기 좋은 날씨로 변한다. 이대로 두면 그대로 잘 것 같아서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확인하고 단단히 무장해서 산책을 나왔다.
당산봉 중턱에서 시작되는 올레길 12코스를 따라 쭉 걷는다. 얼마 전에는 신창에서 이리로 걸어왔으니까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걸어야겠다. 해가 드니까 더 맑아보이는 바다를 왼쪽으로 두고 산길을 따라 걷는다. 절벽아래 해안에는 낚시꾼 아재들이 줄지어 서있다. 멀리서 보면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빛바랜 억새가 가득한 길을 다 지나고 나면 올레길과 해안도로가 만나게 된다.
중간 지점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이 있고 해안도로의 끝에는 신창성당이 있어서 그야말로 성지순례다. 내 오른쪽을 휙휙 지나가는 차는 늘어나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바람의 방향따라 콧물이 넘치는 걸 보니 사람들이 오늘은 굳이 걷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따뜻한 공기가 필요해서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려했는데 주말 나들이를 온 사람으로 이미 꽉 차있다. 뜨끈한 차를 마시면서 읽을 책도 들고 왔는데... 괜히 억울하다. 점심 먹고 까먹은 천혜향 냄새가 남은 손바닥만 킁킁대면서 해안도로를 빠져나온다.
2시간을 열심히 걸었더니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가 몰려온다. 귤을 두 개 까먹으면서 책장을 몇 번 넘기다가 결국 뻗었다.
운동하고 돌아와서 책을 마저 읽는다. 출근하는 친구들은 휘리릭 지나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하는데 나는 매일이 일요일 같아서 그런지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아 근데 그래서 시간이 빨리 가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