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일기] 주차 안내 알바

12월 3일 - 4일 (12만원)

by 태희킷이지

12월 3일 - 4일 (12만원)


알바의 아침이 밝았다. 다른 알바들과 함께 담당자를 쪼르르 따라다닌다. 경광봉과 코트, 그리고 머리에 전혀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이는 챙모자를 받았다. 이틀짜리 행사의 시작 날인 오늘은 유난히 좀 분주하다 못해 부산스럽다. 정신없는 업무 설명이 대충 끝나고 교대조 편성도 마쳤다. 나는 1라운드, 2라운드 지명도 받지 못해서 처음부터 쉬는 타이밍이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지명받아야 꿀일 것 같다는 생각에 몹시 실망해 어깨와 입꼬리가 함께 처진다.


오늘 행사는 신축 아파트에서 분양 전 입주예정자들에게 사전점검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거란다. 귀하신 입주자들을 위해 아침부터 레드카펫을 깐다. 3분 전까진 쉬라고 해놓고선 다시 앉아 있는 나를 불러내 레드카펫을 깔라고 한다. 실내에서는 테이프와 접착 스프레이로 붙일 수 있는데 보도블럭 위엔 못질이 필요하다. 어디선가 찾아낸 못과 망치를 내게 쥐어준다. 레드카펫을 살짝 들어 보도블럭의 틈새를 확인하고 왼손에 못, 오른손엔 망치를 든다. 토르의 마음가짐으로 쪼그려 앉아 자리를 잡는 순간 어디선가 팟소리가 난다. 불편한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도 추니닝을 입은 것마냥 갑자기 하체가 편안해진다. 바지가 터졌다.


가랑이 사이로 느껴지는 한기를 믿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대본다. 흠!! 확실하다. 시무룩해진 나의 어깨를 보고 다가온 담당자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했다. "저 죄송한데 제가 못 박기를 하는 게 불만은 아닌데요. 원래 업무가 아닌 못 박기를 하다가 바지가 터졌거든요. 수선비 좀 주시면 안될까요." 담당자는 내가 집에 가버릴까봐 걱정했다면서 수선비가 엄청나게 나오지 않는 이상 주겠다고 약속한다.


차라리 차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면 시간이라도 빨리 갈텐데 지하주차장은 몇 시간째 텅텅 비어있다. 가만히 손에 쥐고 있는 경광봉이 민망해 이마트 주차 알바님들이 하던 손동작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따라해보기도 한다. 아침보다 나아진 거라곤 음악이 흐른다는 것뿐인데 음악들이 하나같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졸린 팝송 100선> 같다. 아직 교대시간은 멀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입간판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알바도 이틀하면 힘들다. 이건 그리 좋은 알바가 아니라 이틀하려고 하니 벌써 집에 가고 싶다. 어제는 심심한 게 제일 문제였는데 오늘은 허리가 너무 아프다. 가만히 서있으면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배경이 위병소로 바뀌는 느낌이다. 나같은 주차요원들은 그래도 상황이 한결 낫다. 제자리에서 슬쩍슬쩍 움직이기도 하고 주차장 저편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한다. 정장 빼입고 경호알바 하시는 분들은 그냥... 헌병 같다.


중간중간 30분씩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는 아파트 경로당에 가서 앉아있는다. 1시간 동안 오지도 않는 차를 열심히 안내하고 돌아오니 맥딜리버리 박스가 하나 놓여있다. 간식으로 맥도날드 시켰다는데 세트 20개를 샀단다. 입주자들을 각 세대로 안내하는 알바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데... 베토디였다고 해도 체지방 부자인 나는 먹지 않았을테지만 그래도 눈 앞에 먹을 걸 가져다 놓고 주지 않는 건 너무한 것 같다. 결국 위병과 헌병은 먹지 못하고 시설 안내해주시는 분들만 드셨다고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햄버거 속 칼로리들이 적극적으로 흡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퇴근 후 온 몸에 힘을 빼고 멍하니 누워있는데 손전화가 빠른 입금을 알린다. 어후 피 도는 것 같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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