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13일, 14일, 21일 (현금으로 섭섭하지 않게 받음)
12월 5일, 13일, 14일, 21일 (까먹었는데 현금으로 섭섭하지 않게 받음)
공사 현장 청소 알바라길래 엄청나게 빡셀 줄 알았는데 작업 중 필요한 물건 가져다 주고 중간중간 청소하는게 전부.
아침 일찍 제주시로 넘어가 귤밭을 앞에 둔, 볕 잘 드는 공사현장에 도착한다. 완성되면 사무실로 쓰일 곳이라는데 높은 천장에 탁트인 귤밭뷰라 좋긴 좋지만 뭔가 일은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무 기둥이 얽혀있는 천장을 마른꽃으로 채운다. 형이 꽃이름도 하나하나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런 색을 유지하는 꽃들이란다. 형은 플로리스트 겸 인테리어 일을 한다는데 들었을 땐 연결고리가 있나 싶던 두 분야가 직접 보니까 많이 가까워 보인다.
불에 그을린 거대한 나무뿌리가 쇠사슬로 천장에 달려있다. 저건 뭔가 싶었는데 소켓 달린 전선 몇 줄을 휘어감고 커다란 에디슨 전구를 달아놓으니 느낌있는 나무 등이 되었다. 높은 조도가 필수적이지 않은 공간에 요즘 에디슨 전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난 그저 사다리 아래에서 이것저것(꽃, 와이어, 전선, 전구) 가져다주면 되는 역할이라 딱히 힘들 건 없었다. 와이어를 사용해 꽃을 다발로 만들어 사다리 위로 올려주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꽃 자르는 전지가위로 전선 피복을 벗기다 구리선을 몇 번이나 끊어먹어서 좀 난감했다. 빌어드실 아무리 그래도 나 통신병인데... 니퍼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셀프로 토닥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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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현장에 들어오자마자 전구 다섯 알 정도를 깨먹었다. 조그맣고 가벼운 알전구가 파짓파짓 소리를 내며 터진다. 오후에 시작하는 알바를 하면 이상하게 몸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평소와 달리 내 맘처럼 안 움직이는데 오늘이 그렇다. 형이 시키는 대로 느릿느릿 천장에 노끈을 매달고 그 끈에 줄전구를 달고 나니 주위가 컴컴해졌다. 돌담쌓는 일은 내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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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레스 판을 씌워 싱크대를 만들 나무 상판을 자른다. 형이 그려준 선을 따라 슬근슬근 톱질을 시작하는데 마음처럼 매끄럽게 잘 되진 않는다. 인성이야 어찌됐건 톱질은 잘했을 놀부가 존경스럽다. 팔에 잔뜩 힘을 줘서 세로로는 잘랐는데 가로로는 어떻게 잘라야 할 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형이 글라인더를 가져왔다. 제가 해보겠다며 한 손으로 글라인더를 꽉 쥐고 상판에 슬쩍 갖다대니 위이이잉~ 하면서 글라인더 날이 깊숙히 들어가는 게 아니고 통통 튄다. 오 무서워서 못하겠다. 슬쩍 뒤로 빠져 형이 하는 걸 보니까 발로 상판을 꽉 누르고 두 손으로 가져다 대야 글라인더의 진동을 견뎌낼 수 있는 것 같다.
글라인더가 지나가는대로 나무는 깔끔하게 잘려나간다. 내가 낑낑대면서 해낸 거친 톱질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글라인더로 나무를 자르면 나무의 단면은 시커멓게 그을리고 만다. 크으 역시 모든 것은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여기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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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해의 마지막 알바가 될 것 같다. 나무문에 철제 느낌이 나도록 회색 페인트를 바르고 그 위에 부식 페인트를 덧바른다. 시간이 지나면 철제문이 녹이 슨 것 같은 질감으로 바뀐다고 한다. 신기하다. 실제로 창고였던 이 건물과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굉장히 머리 아픈 향을 뿜어내는 에폭시를 잘 섞어 헤라로 현무암에 살짝 발라주면 형이 돌담을 쌓는다. 돌담작업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치즈처럼 길게 늘어진 에폭시 몇 가닥이 바지에 찰싹 붙었다. 아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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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자고 아침 비행기로 탐라국에 온 형이 굉장히 피곤해하더니 한 시간만 차에서 잔다고 한다. 고용인 수면요건을 보장하기 위해 피고용인도 조용히 잔다. 고용인보다 10분 일찍 일어날 수 있게 알람 맞춰놨었는데 고용인이 깨워줘서 일어났다. 아 나란 알바...